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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Sep 02. 2024

다들 어쩜 그리 평범하게 잘 살까

어느 이십 대의 일기


2021년 2월 2일 화요일

새벽 3시 7분



 실패해선 안 되는 공부를 하는 중. 동기부여가 덜 된 상태로 공부하려니 잘 안 된다. 사실 대학원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안 가고 싶은 건 아니고 달리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작년에도 이러다가 반년을 그냥 흘려보냈는데. 그때 없었던 확신이 이제 와서 저절로 생길 리도 없다. 잠을 설치게 만드는 고민과 잡념들의 양상은 그때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평범함에 대한 갈망이 해가 갈수록 커진다. 다들 어쩜 그리 평범하게 잘 살까? 초등학생, 중학생 땐 남들이랑 똑같이 될까 봐 무서웠다. 꼭 특별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마냥 가슴이 부푼 채로 살았다. 이제는 남들처럼 못 살까 봐 무섭다. 가끔 뭐라 표현하기 힘든 참담한 기분을 느낀다. 나에 대한 실망감, 남들에게 다 있는 걸 나만 갖지 못한 것 같은 분한 마음.


 만약 정말 내가 못 가진 게 있다면 그것의 정체는 뭘까? 냉큼 이름 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짜증 난다. 그런데 또 실은 그런 거 없다는 걸 알아서 더 짜증 난다. 사람은 다 비슷하다. 그런데도 왜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그렇지 못할까? 이렇게 불확실한 세상을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많은 것을 운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으면서 잘도. 심지어 때로는 세상이 오로지 노력과 보상으로만 가득 차 있다고 믿는 척하면서까지.


 나도 차라리 믿고 싶다. 허망한 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면 화가 불쑥 난다. 슬픔은 빨리 사라지는데 분노는 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 같은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나는 화내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화내는 기계. 오랜 우울이 분노의 연료일까, 아니면 똑같은 건데 모습만 바꿔가며 나를 헷갈리게 만드는 걸까. 무엇에 이렇게 화가 나는 건지도 잘 모른다.


 나는 그냥 엄마가 밉다. 세상 사람들이 다 싫다. 아빠랑 살기 싫다. 사실 내가 싫은 건데 날 싫어하긴 너무 비참해서 사방팔방 화풀이를 한다. 쉽고 편하게 살고 싶다. 더 많이 쉽고 편하게. 사는 것 같지도 않게. 사는 게 어렵다. 아.... 시간 가는 게 무섭다. 부모 장례는 또 어떻게 치러야 하나....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삶과 내일과 세상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살까?


 이 상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안다. 놓아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날아가서 숨는다. 배불리 밥을 먹고 햇볕 아래 산책을 한 뒤에 공부를 하든 게임을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정신을 쏙 빼놓으면 된다. 어릴 땐 우울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늘 내 손으로 우울을 잡고 있는다. 도망가지 못하게, 그래서 계속 우울할 수 있게. 사실은 내가 우울을 좋아한다. 우울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아니라고 악쓰고 싶지만 정말로 그렇다.

 

 나는 세상에 좋아하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 오늘 아침 좋아하던 것이 저녁에는 싫어진다. 그래도 딱 하나 고르라면 내 방을 고를 건데 지금은 갑자기 방을 통째로 버려버리고 싶다. 그러면 정말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에게 너무 좋은 것이란 너무 귀찮고 두려운 것. 그래서 버리고 싶은 것. 나는 그래서 우울만 좋아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울은 나쁜 거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우울조차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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