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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Jul 02. 2020

자살의 '정확한' 사망시간은 알 수 없다

남겨진 자의 이야기(1)

때 이른 봄 기운에 설레던 3월 11일 오후 2시.

점심 뒤 나른한 낮잠의 유혹을 이기려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을 때, 휴대 전화에 낯선 지역번호의 번호가 울렸다. 또 어디 대출받으라는 전화인건가.  


"여보세요"

"여기 제주도 OO경찰서 OO 형사입니다. OO씨 가족이신가요?"

수화기 너머 동생의 이름이 들리는 순간 짜증이 확 밀려왔다.  

'이 놈이 또 사고를 쳤구만'

마흔이 넘어서까지 제 앞가림도 못하고 사고만 치고 있는 동생이었다. 그 사고를 뒷처리 하는 건 늘 가족의 몫이었다.


"네. 그런데요?"

"오늘 아침에 제주도 해변에서 시체가 발견됐습니다. 소지품을 검사하던 중 OO 씨 신분증이 있어서 연락드립니다. 지금 신원확인을 해주시러 내려오실 수 있으신가요?"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장난 전화를 하는게 아닐까?'

어렸을 적, 동생과 노란색 전화번호부 책을 뒤적이다가 아무 중국집이나 연락해서 "여기 짜장면 다섯그릇 주문이요" 라고 엉뚱한 주소를 알려주며 키득댔던 적이 있다. '형사'라던 그 사람은 지금쯤 전화를 끊고 혼자 웃고 있지 않을까.

'그때 정말 죄송했어요. 짜장면 다섯 그릇 값, 아니 오십 그릇 값 지금 드릴께요. '



회사에 바로 휴가를 내고 아버지와 언니랑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아닐꺼야' 수백번을 읊조렸다. 벌레도 잘 못죽이는 애가 자살이라니.

제주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한 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6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형사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사건에 대해 짧게 브리핑을 해줬다.

아침에 한 관광객이 해변을 구경하다가 절벽 밑에 누군가 밧줄에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 신고를 했고, 마침 가방에 지갑과 신분증이 있었다고 한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사망한 뒤였으며 사망자의 소유로 보이는 차량이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차량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혼자 밧줄을 들고 걸어갔으며, 난간에 묶고 뛰어내린 모습이 보여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형사가 말했다.

"가족들의 신원확인이 필요한데 마음의 준비가 되셨는지요?"



처음 봤다. 영안실이란 곳을


형사는 영안실로 우리를 안내하더니 마치 서랍에서 옷을 꺼내듯이 한 서랍의 손잡이를 쭉 잡아당겼다. CSI에서 보던 것처럼 흰 천을 가슴까지 덮고 한 시신이 누워있었다.

내. 동.생.이.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오열을 했다.


동생의 얼굴을 만졌다. 뺨은 얼음장보다 차가웠다.

동생의 이름을 연거푸 불렀다. 아무리 불러도 동생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았다.  

"제발 눈 좀 떠봐!"



형사는 한참을 기다린 더니 용기를 낸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OO씨가 맞죠?"




"다행히 일찍 발견되서 훼손이 덜 됐습니다. 보통 한참 뒤에 발견되면 참혹한 모습인 경우가 많거든요"

형사는 우리에게 약간의 위로를 주고 싶은 듯, 나즈막히 얘기했다.

말을 듣고 보니 뛰어내린 사람 치고는 시신은 별다른 상처 없이 깨끗했다.

그마나 다행이라 해야 할까.


"언제 죽었는지 알수 있을까요"

여든살이 다 된 주름투성이 아버지는 형사에게 한마디 한마디 힘겹게 건넸다.


"이럴 경우 사망시간은 병원에 내원한 시간으로 합니다.

그래서 아드님의 사망시간은 3월 11일 오후 1시27분입니다. 다만 사망 추정시간은 지난 새벽 1~2시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 병원에서 사망하면 의사가 숨이 끊어진 순간의 시간을 알려준다.

하지만 자살한 사람의 경우 사망시간은 절대 알 수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됐다. 숨이 멈춘 한참 뒤에 병원에 도착한 그 시간이 사망시간인 것이다.

그저  '추정'의 시간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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