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의 이야기(2)
장례식은 하지 않기로 했다.
친지와 지인들이 장례식에 오면 하나같이 수군댈텐데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동생의 마지막을 사람들의 동정속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자살했다며?"
"살아있을 때 사고 뭉치에 골치덩어리였다는데?"
"가족들은 동생이 자살하기 까지 신경도 안쓴건가?"
조문객들로서는 당연한 궁금증들이겠지만 이 말들은 우리를 두번 죽이는 날선 칼날이었다.
자살로 남겨진 이들에게 장례식은 사치였다.
"부검을 해야하는 데 가족분들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시체를 확인하자 형사가 기다렸다는 듯 얘기했다.
자살인데 왜 부검 까지 해야 하는지. 이미 죽었지만 또 다시 동생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CSI에서는 모든 사건마다 부검을 하는데 드라마 속 유가족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동의한다. 부검의의 날카로운 메스가 시신을 지나가면 마치 지퍼를 내리듯이 피부가 쫙 갈라지고, 때로는 머리 뚜껑까지 열린다. CSI에서 수백번 봤던 장면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도저히 안되겠어요.
수사사건에서는 당연히 부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내 앞에 닥치니 결정하는게 참으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형사는 혹시 모를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확실하게 부검을 해야한다고 설득했다.
"만약 부검을 하지 않는다면 동생이 혹시 타살된게 아닌가, 아마 가족분들도 평생 후회하며 사실거에요"
결국 우리는 장례식 대신 부검을 하게 됐다.
모든 것이 뒤엉킨 밤이었다.
어제는 동생이 있던 날이었고 오늘은 동생이 사라진 날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악몽의 기억도 함께 사라지면 좋으련만.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하루는 그렇게 느릿느릿 지나갔다.
오후 3시에 시작된 부검은 4시가 넘어서 끝났다.
영안실에 다시 왔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한번 더 동생을 확인했다.
제발 살살 해달라는 우리의 부탁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부검이 그런건지 몇 군데 꿰맨 자국만 보일 뿐 어제와 큰 차이가 없는 깨끗한 얼굴이었다. 부검의 최종 결과는 한달 뒤에 나오지만 1차 소견으로는 자살이 확실했다고 했다.
다음날 우리는 동생을 화장했다.
화장터에 들어간지 1시간 반만에 동생은 작은 유골함에 담겨 나왔다. 움푹 패인 아버지의 눈에는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무심한 놈아, 어떻게 부모를 남겨두고 먼저 간단 말이냐!"
정신없는 3일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일상이 시작됐다. 하지만 난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웠다.
해가 지면 괴로움과 고통이 찾아왔다.
오래전에 한달동안 이집트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자유에 대한 동경은 늘 사막과 연결되어있다.
리비아와 맞닿아있는 이집트 서부의 바하리야 사막은 특이하게도 백색 모래가 가득해 '화이트사막'으로 불린다. 어디를 둘러봐도 망망대해 처럼 끝없이 펼쳐져있던 이집트 바하리야 사막의 밤이 불현듯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