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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Jul 13. 2020

그는 언제부터 자살을 생각했을까

남겨진 자의 이야기(3)

동생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그의 원룸을 찾았다.

관리사무소에서 마스터키를 받아 가던 우리는 그대로 멈춰섰다.


도어락 위에 비밀번호가 적혀있었다.

동생은 포스트잇에 비밀번호를 적어놓고 혹시나 떨어질까 걱정됐는지 스카치 테이프를 그 위에 여러겹 덧대놨다.

그는 죽음 뒤에 가족들이 이곳에 올걸 예상하고 비밀번호를 적어놨던 것이다.




동생의 집은 늘 지저분했다.

'그 나이때 남자들이 늘 그렇지' 라고 넘기기엔 정도가 좀 지나쳤다.


간혹 동생 집에 가면 온종일 집안 살림을 했다. 

냉장고에는 정체불명의 음식들이 쌓여있었고, 방바닥은 끈적한 때가 가득해 몇번을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혼자 사는 남자들의 평범한 집 풍경일 수 있지만,  

더 화가나는 일은 집안 곳곳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술병들이었다.

알콜중독 치료병원을 몇번이나 전전할 정도로 술에 빠져살았는데 여전히 술을 끊지 못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도대체 넌 어쩜 이렇게 의지박약이니!" 가시돋힌 말을 참 많이 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현관 문을 연 순간, 믿을 수 없었다.


이불은 가지런히 침대위에 정리되어 있었고 수건은 차곡차곡 서랍에 개여있었다.

(도대체 죽기로 마음 먹은 애가 수건을 왜 죄다 빨아놓았던 건지) 

음식물 쓰레기 조차 없었고 바닥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게다가 아무리 찾아봐도 술병은 전혀 없었다.

단 한번도 보지 못했던 동생의 집이었다.



옛날에 어르신들이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고.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웃곤 했는데 지금에야 알았다. 이 말은 지독하게 슬픈 언어였다. 


 



동생은 언제부터 죽기로 결심한걸까


식탁 위에 동생의 수첩이 놓여 있었다.

그는 죽기 얼마전 부터 날짜별로 메모를 해놨다.

아마 남겨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남겨놓았을 것이다.


몇월 며칠 - 죽기에 좋은 곳을 찾으러 다녔다.

몇월 며칠 - 얼마 전 찜해놓은 그 곳은 생각해보니 별로였다. 더 좋은 곳을 발견했다.

몇월 며칠 - 오늘은 하루종일 집 정리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기분이 좋다.

몇월 며칠 - 더 빠진게 없을까.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마침내 얻게 되었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매일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中


도대체 너는 언제부터 죽기로 결심했던 거니!




 

스리랑카  누와라엘리아에 있는 '세상의 끝(World's end)'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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