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의 이야기(4)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직장에 복귀했다.
특별휴가는 고작 하루였다. 회사지침 상 부모님 상은 5일이고 친형제 상은 하루 뿐이다.
친형제가 죽었는데 하루만 쉬라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지침이 그러니 어찌할 수 없었다.
휴가 이틀을 더 내 3일 만에 다시 출근했다.
아침에 컴퓨터 전원을 켜면 퇴근할 때까지 어떠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루종일 멍하니 있는 나에게 동료가 말했다.
"여행을 떠나보지 그래?"
여행이라면 죽고 못사는 나다.
한해 연가를 요리조리 짜맞추어 일년에 3~4번씩은 비행기를 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가고 싶지 않았다.
'왠 여행~'
손사레를 치던 그 때 강원도 영월이 떠올랐다.
영월은 단종 유배지다.
12살의 어린나이에 왕이 됐지만 3년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는 비운의 왕, 단종.
첩첩산중인 영월로 유배되고 한양을 그리워하다 17살에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여행을 떠날 이유가 생겼다.
외롭게 죽음에 직면해야 했던 영혼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영월에 갔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배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작은 섬이다.
세조는 단종이 철저히 고립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하지만 두달만에 홍수가 나서 청령포를 나와 관풍헌으로 옮겨진다.
청령포에 있을 때 단종은 매일 노산대에 올라 한양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얼마나 처연하고 황망한 느낌이었을까.
500년전 단종을 만난다면 꼭 얘기해주고 싶다.
"혼자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단종은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졌다.
왕의 시신을 강에 버리다니, 단종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슬픔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엄흥도라는 인물이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산에 묻었고, 그 후 복위되어 장릉에 모실 수 있었다.
죽어서도 슬픔을 떨쳐낼 수 없었던 인물, 단종.
장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소나무숲이 울창한 언덕을 10분 정도 올랐을까, 탁트인 평지에 잘 정돈된 장릉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릉의 모습을 보자 기어이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엎드려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나약한 육신으로 권력에 희생되어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던 단종의 슬픔.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았던 걸까.
외로움과 홀로 싸워가며 쓸쓸히 생의 마지막을 맞아야 하는 가련한 인생이여!
여행으로 슬픔이 사라지진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예상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월은 나를 조금은 위로해줬다. 남아있는 사람은 하루를 또 살아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