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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Aug 29. 2020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물건

남겨진 자의 이야기(6)

동생의 마지막 물건이 집에 왔다.

동생의 차 블랙박스에서 자살 몇시간 전 우체국에 간 모습이 찍혔다는데 이 물건이었구나. 

아마도 가족들에게 자신의 유품을 보내는 것이 동생의 마지막 의식이었던 모양이다.


  

장례가 끝나고 박스를 열었다.

이런 순간엔 자살이 조금 더 낫다고 위안삼아야하나.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고인이 어떠한 물건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어했는지 알수 없을테니.


박스안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부모님이 입을 겨울 패딩과 손목시계, 그리고 노트북이 있었다.

'그동안 효도를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손편지가 함께 담겨있었다.  

그의 유서는 아니었지만, 이 짐을 챙겼을 때는 이미 자살을 맘먹었기에, 아마도 가족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티크목재로 만들어진 250년된 미얀마 우베인다리. 삶이란 그저 순간속으로 사라져간다.  




노트북은 누나들이 쓰라고 적혀있어 가져오긴 했지만 사실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안에 동생이 써놓은 일기라도 있으면 슬픔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일주일 쯤 고민하다 노트북을 연결했다.

노트북은 방전된 지 오래라 한참 후 켜졌지만 포멧되어 깨끗했다.

'행이네' 생각하던 찰나, 폴더 하나가 눈에 띄었다. 



폴더에는 동생이 몇년 전 다녔던 회사 업무 파일이 있었다. 

'왜 이것만 남겨놓았을까'


파일은 각종 함수와 수식을 사용하여 깔끔하게 엑셀로 정리된 업무 사항이 담긴 내용이었다. 

동생은 평소엔 별탈없이 직장에 다니다가도 우울증과 알콜 중독으로 퇴사 하는 일이 잦았다.  반복되다 보니 가족들은 그의 무능력함에 지쳐갔었다.   

 

아마도 이건 동생이 일부러 남겨놓은 것이리라!

걸핏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동생을 난 늘 '쓸모없는 인간', '잉여인간'이라며 무시하고 비판했었다.

회사에서 일을 못해 적응하기가 어려워 늘 그만둔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동생은 마지막에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난 그렇지 않았어. 이렇게 열심히 일했잖아"라고.  



어느 하나 어둠을 밝히지 않는 조명은 없다/다낭 호이안 


난 그동안 동생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격려 한마디 한적이 없다. 

후회는 늘 지나간 뒤에 찾아온다. 

후회가 생길걸 미리 알았다면 한번이라도 그를 칭찬했을텐데. 


노트북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리고 한번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해줬다.  


너는 결코 무능하지 않았어. 너에게 칭찬 한마디 못한 나야말로 너에게 잉여인간었구나. 

그동안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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