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여행 Oct 01. 2020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자살 충동이 찾아온다

남겨진 자의 이야기(8)

동생의 자살 후 몇달이 흘렀다. 

하루는 퇴근 후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평소에는 애주가지만, 슬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땐 술을 멀리하는 편이다. 감정의 격해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날도 소주 몇잔만 들이켰을 뿐 금새 자리를 끝내고 일찍 돌아왔다. 


하지만 알코올 한방울이 나의 뇌관을 터트린걸까. 그날 밤, 나는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아부었다.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아무리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멈춰지기는 커녕 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동생에 대한 미안함, 원망, 불쌍함. 모든 감정들이 마치 우주 속 별처럼 생성되고 서로 충돌하며 사라졌다.  





자살로 부모, 형제를 보내고 남겨진 가족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미안함'이다. 

홀로 삶을 정리하도록 방치했다는 미안함, 따뜻한 말한마디 건네지 못했다는 미안함. 

미안함은 자책이 됐고 나는 가슴을 사정없이 주먹으로 치며 스스로를 원망했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밤하늘이 보였다. 새벽별이 참 아름다웠다. 

무언가에 홀리듯이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 아래를 쳐다봤다. 

13층 높이의 아파트가 그리 높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샌가 나는 베란다 난간위에 올라가고 있었다.  

'너한테 참 많이 미안하다. 내가 살아갈 염치가 없구나' 

그때 갑자기 불어온 늦은 봄바람, 난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되가고 있었다. 집에 온지 6시간이나 흘러있었다. 

'호접지몽(胡蝶之夢)' 

장자는 꿈에 호랑나비가 되서 훨훨 날아다니다가 깨서는 자기가 호랑나비였는지, 호랑나비가 자신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치 악몽을 꾼듯, 흐릿하고 몽환적인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거울을 보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은 눈이 내가 현실의 공간에 있었음을 일깨워줬다. 


자살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주변에 파장을 일으키는 일임을 알게 됐다. 남겨진 이들은 파장의 흔들림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그냥 아들 따라서 죽어버리고 싶다"고. 




가족이 먼저 떠났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을 가족 중 누구도 함께 해주지 못한 채 홀로 외롭게 죽어갔다는 생각은 살아남은 가족들에게는 견딜수 없는 고통과 자책의 시간이다. 

상처가 아물어질 순간이 올수 있을까. 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간다. 


언젠가는 끝이 보이겠지. 비록 느리더라도. (사진 : 우즈벡 부하라의 어느 사원)


이전 07화 죽은 이의 흔적을 지워가는 과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