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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Oct 24. 2020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라는 흔한 위로

남겨진 자의 이야기(8)

동생이 죽고 여러 날이 흘렀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동생이 생각나지 않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운전하고 가다 옆을 스치는 가로수만 봐도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가족의 부재에 따른 상실감은 그렇게 내 곁에 항상 존재해 있었다.  



동생 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지는 않았다.

슬픔은 나눠야 반이 된다고 하지만, 슬픔을 나눠 다른 사람에게 그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오랜 친구들과 친척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 몇명에게만 얘기했다. 간혹 모르는 사람들은 "요즘 얼굴이 많이 수척해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요?"라며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럴때면 "아, 그냥 일이 많아서 그렇죠 머"라며 머쓱하게 넘겼다.


근황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사무실에서 잠시라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면 "잠깐 나가서 커피라도 한잔 할까?"라며 걱정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정말 배가 불러서 점심을 반쯤 남기는건데도 "그럴수록 더 든든히 챙겨먹어야지"라며 애정어린 잔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동안 그들에게 들었던 가장 많은 위로의 말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야"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시간은 만물을 스러지게 한다. 만물은 시간의 힘 아래 서서히 나이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다.


거대한 파도가 모래를 삼키는 것처럼 시간의 위력은 대단하다. 명예와 돈이 많은 이들도 죽음에서 피할 수 없듯 시간은 결국 모든 걸 집어삼키고야 만다.

물론 잘 안다. 그대로 두면 시간은 어떻게든 나의 상처를 아물게 만들 것이고, 나의 기억 또한 흐릿하게 만들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시간 해결설'은 나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의 심정을 잘 안다.

어떻게든 나를 위로하고 싶었을테고, 작은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기 때문이란 걸 말이다.

아마도 그들에게 똑같은 일이 생기면 나 역시 같은 위로의 말을 건넸을 것이 뻔하다는 것도.




가족의 죽음 앞에 건넬 위로의 말은 없다.

한때는 죽고 못살던 사람과 헤어지며 겪는 이별의 상처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다. 하는 일마다 안돼 자포자기 하며 집에 틀여박혀 있었던 젊은 날의 공허함과도 또 다른 깊이였다. 이런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상처다.

"그때 그 놈과 정말 잘 헤어졌어"

"지금은 일이 바빠 휴가도 못내는데 백수때가 그립다"

친구들과 술한잔 하며 이렇게 얘기할 만한 기억들이다.


시간이 흘러도 무뎌지는 슬픔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슬픔.

더욱이 가족이 혼자 죽게 내버려뒀다는 자책감은 남겨진 이들에게는 절대 아물지 않는, 평생 함께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숙명과도 같은 슬픔이다.


오늘도 숙명 같은 슬픔과 함께 살아야 하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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