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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Oct 25. 2020

자살은 가족들을 죽이는 타살 행위다

남겨진 자의 이야기(10)

혹시 지금 이순간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다시 생각하기를 바란다.  

자살은 남겨진 이들을 죽이는 날카로운 칼날다. 나의 자살로 가족들은 영혼의 죽음 상태에 이른다. 자신의 목숨 하나만 끊는 것이 아니다. 결국 가족들 까지 죽이는 영혼의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동생의 죽음 전과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잠을 자고,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하지만 모두 다 마음 한켠에는 큰 구멍이 뚫려있음을 안다. 한자리에 모여도 가급적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가슴속 큰 구멍 속으로 차갑고 메마른 바람이 불어와 금새 쓰러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생은 자신도 죽이고, 남은 가족들의 마음도 죽였다.  





동생의 자살원인은 조울증이었다.

조울증은 우울증과 비슷하지만 조증과 우울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양극성 장애라고 불린다. 조증일때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쳐 과도하게 낙관적이지만, 우울증이 오면 염세적이 되고 자책감에 빠지게 된다. 감정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장단맞춰야 할지 모를때가 많다. 회사에 열심히 다니고,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불과 몇달 뒤에는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혀 술에 빠져 살기도 했다. 가족들은 그럴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불안하기만 했다.


알코올 중독이 심해지다 보니 조울증과 함께 알코올 치료도 받아야 했다. 온전한 결혼생활이 될리 없었고, 그럴 때마다 동생의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사실 동생의 죽음뒤에야 비로소 동생의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게 됐다. 예전까지는 술하나 끊지 못하는 의지력 부족을 핀잔만 하고,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염세적인 시각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가정을 꾸려가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동생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혼자 괴로워하며 살아왔는지, 얼마나 스스로 버티기가 힘들었을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너무 늦게 동생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다.


동생은 그동안 몇번의 자살소동을 일으켰었다. 새벽에 이상한 문자를 보내고 연락두절되어 밤새 발을 동동 구른적도 있었고, 호텔 방에서 술마시고 쓰러져있다는 경찰 연락을 받은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동생이 자신의 괴로움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난 지금 너무 힘들어. 제발 나를 봐줘'라는 절규였다.  


예전에는 자살률이 지금보다 낮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부쩍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듯 하다. 누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얼마나 세상이 어둡고, 삶이 견딜수가 없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 또한 얼마나 클지, 그 절절함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슬프게도 동생은 유서한장 남겨놓지 않고 떠났다. 그리고 휴대폰 조차 바다에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동생이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길이 없다. 그저 죽을 장소를 찾아다닌 기록이 있는 수첩으로만 동생의 마지막을 유추해볼 뿐이다. 차 안에 남겨진 반쯤 먹다 남은 카페라떼가 자꾸만 생각난다. 라떼 한잔 마저 먹기도 싫을 만큼 빨리 세상을 떠나고 싶었던 걸까.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향기>(1997)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바디는 수면제를 먹고 깊은 구덩이에 들어가 자살할 결심을 한다. 그는 자신이 죽은 다음날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첫번째로 군인을 만나지만 사연을 듣더니 도망가기에 바쁘다. 두번째로 만난 신학도 역시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일하는 노인을 만난다.

<체리향기>의 한장면. 자살하러 가는 이의 길


노인은 자신이 자살하려고 했던 경험을 이야기해준다.

자살하려고 나무에 올라탔는데 순간 체리가 떨어졌고 그걸 하나 먹는 순간 달콤한 체리맛에 빠져 또 하나를 먹는다. 그때 산등성이에 떠오른 태양을 보고 자살하려던 마음을 바꿨다.


"이른 아침 붉은 태양이 물드는 하늘을 본 적이 있소?

보름달 뜬 밤의 고요함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소?

누구의 삶이나 문제가 있게 마련이지.

하지만 생각해봐요. 삶의 즐거움을.

막 떠오르는 태양의 아름다움을.

맑은 샘물의 청량함 그리고 달콤한 체리의 향기를"


주인공이 왜 자살하려는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황량하고 메마른 이란의 풍경은 자살하려는 이의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건조한 모래언덕의 풍경과 담담한 감정 표현이 좋아 몇번을 봤던 영화다.

노인과 헤어진 바디는 밤이 되어 구덩이에 들어간다. 그때 빛나는 밤하늘을 보게 됐고,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자살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동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를 구원해줄 달콤한 체리하나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랑한다 동생아. 부디 그곳에서는 이제 행복하게 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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