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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Aug 17. 2020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부모

남겨진 자의 이야기(5)

부모를 잃은 자녀를 고아라 한다.

남편잃은 부인을 미망인이라 하고, 부인을 잃은 남편을 홀아비라 부른다.

하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뜻하는 단어는 없다.


'파란색' 이란 말만 봐도 파랗다, 푸르다, 시퍼렇다 등

미묘한 차이로 여러개의 단어를 만들어내는 '단어강국' 이 바로 우리나라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만들지 못한 단어가 있다는걸 알았다.

바로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를 뜻하는 말이다.

그 고통과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수 없어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동생 시신을 확인해야 한다는 제주도 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아빠, 언니와 함께 비행기를 탔다.  

엄마는 최근 암수술이 끝난 터라 비밀로 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알게 되더라도 지금  충격을 받으면 안될것 같았다.


아빠는 비행기에서 내내 고개를 떨군채 애꿎은 손만 만지작 거렸다.

아빠의 손을 참 오랜만에 봤다.

여든이 가까워오는 나이라 손은 고목나무처럼 갈라지고 검버섯이 가득했다.

아빠는 평생 노동을 하며 살아왔다. 수십년간 쌓인 노동의 흔적이 더욱 손을 거칠고 투박하게 만들었으리라.



 


영안실에서 동생의 시신을 처음 확인할때도, 염을 하고 시신에 마지막 인사를 할때도

그리고 화장터에서 한줌 재가 되었을 때도 아빠는 계속 같은 말로 부르짖었다.

"혼자 떠나면 어떡하란 말이냐! 나도 데려가라, 이 불효자식아!"

하도 울어서 나중에는 거친 쇳소리만 들려왔지만, 아빠의 절규는 그칠 줄 몰랐다.


그때 느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표현할 단어는 없을 수밖에 없다고.  

아마 수백년, 수천년이 흘러도 그 단어는 만들어지지 못하리라.


제주도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장지에 동생을 묻었다.  

"가장 좋아하는 제주도 바다를 실컷 보면서 이제는 우울해하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삼키고 있는데 아빠는 이미 뒤돌아서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건강때문에 수십년전에 끊었었는데 담배를 언제 샀던 걸까.

거칠고 툽툽한 손마디 사이로 하얀 담배연기가 흘러나왔다.

경제적으로 해준게 없다며 자식들에게 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아빠의 어깨가 더욱 작게만 보였다.


제주도의 푸른 바다

 


집에 돌아온 뒤에 아빠는 아무일도 없었던 듯 지내야 했다.

아픈 엄마를 챙겨야 했지만, 슬픔에 잠겨있기라도 하면 눈치빠른 엄마가 '뭔일이 있는건 아닌가' 캐물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거짓말을 못하는 아빠의 성격상 그대로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슬픔을 가둬놓고 살아가야 하는 아빠가 걱정되어 종종 전화를 했다.

그럴때면 아빠는 잠깐 집밖에 나갈 핑계를 대고 전화를 받는다.

"요즘 괜찮아?"

"아침에 눈만 떠도 눈물이 나는데 그래도 잘 참고 있어"

그리고 한참을 울다가 들어가시곤 했다. 엄마 모르게 가슴속 슬픔을 얼마나 삭히고 또 삭히고 있는 걸까.


"담배는 요즘도 피세요?"

"그날 이후로 한대도 안피고 있단다. 엄마한테 담배연기가 참 해롭잖니"


어릴때는 아빠가 왜 남들과 달리 돈이 없을까, 왜 그럴싸한 직업을 가지지 못했을까.

괜한 투정과 심술도 부렸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직면해서도

남겨진 가족들을 먼저 걱정하는 아빠를 보며 이제서야 깨닫는다.

아빠는 남들이 보기엔 그저그런 가장이었을지 몰라도, 가슴 속에는 그누구도 보지 못한 큰 바다를 품고 있는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난 이제서야 철이 들기 시작했다.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릭샤꾼. 땀흘려 일하는 그의 뒷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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