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만세!

이회영과 이상룡 애국지사, 경교장과 경희궁의 서소문 셋트.

by 류성철의 작은여행

이 BUS를 살려주세요 !

6년 전, 서울 역사문화기념관의 학예사 두 명이

나를 찾아왔다. 버스 내,외관을 그대로 보존하면서엔진 및 구동축을 살려 자체 이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이 버스는 88올림픽 당시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전용 의전 행사 버스였던,

ASIA 자동차 COMBI 라는 중형버스이다. 나는 정년 퇴직 후 버스 정비공장 대표였다.

의견이 안맞아 하지 못했는데, 오늘 와 보니 여기 살아 있었네. 37년된 서울 올림픽의 역사 유물이다.

암튼 굉장히 반가웠다.

오늘 여행 목적지는 신문로 끝의 경희궁과 서울 역사문화관이었다.

광해군이 지었다는 경희궁, 그리고 근현대를 거치며 워낙 사연이 많아 궁궐로서의 가치를 거의

잃어버렸다는 조선 한양의 5개 궁궐 중 하나이다.

일제시대 관청 부지이기도 했고, 경성, 서울고등학교가 들어섰고, 이후 현대건설 소유 등등...

실제로 규모나 여러 전각의 배치등이 다른 궁궐에 비해 초라했고, 무엇보다 관람객도 없고,

관리하는 직원이나 문화 해설사도 안보이고, 그냥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 같은 느낌이었다.

궁궐 내부를 둘러보고, 외곽 담장 밖을 한바퀴 돌아오니 서울 역사 박물관이다.

조선 왕조가 한양을 도성으로 삼고 500년, 일제 강점기 및 근 현대사를 지나는 동안의 서울 역사가

3층에 제대로 압축 되어 있고, 다양한 전시가 수시로 열려 가끔 들러볼 만한 박물관이다.

엊그제가 8.15 광복절.

마침 1층에"국무령 이상룡과 임청각"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다른 것들은 하나도 보지 않고

거기 집중 하였다. 그리고 엊그제 너무 일찍가서 관람하지 못했던 한참 위의 "이회영 기념관"

까지 내처 둘러 보았다.(삼성병원서 5번 마을버스. 서대문- 독립문역 거쳐 이회영 기념관. 사직공원 순환)

그저 국사시간에 잠시 듣고 배웠던 두 분에 대해 많이 새롭게 배웠다.

갑자기 불타오르듯, 애국심이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두 분이 너무 위대하고 훌륭하고 존경스러웠고, 우연히 두 분을 중복해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0818_041257357.jpg 이상룡과 임청각 안내팜플릿 사진

임청각은 안동에 있는 이상룡 가문의 저택이고, 가 본적이 있다.

일제가 일부러 그 집 앞으로 철길을 냈다는.....

이상룡 국무령의 사진은 "만주족과 친해지려고 "단발하셨다고...


우당 이회영

인간 이회영의 폭은 넓었다. 막힘도 없었다. 그는 조선의 지배이념인 성리학을 넘어 양명학(강화학파)에 몰입한 소론 출신이었다. 열 정승을 낳은 집안사람으로서 과거시험이 아니라 신학문을 절에서 공부했다. 종을 풀어주고 과부가 된 여동생을 개가시킨 근대인이었고, 숯장수 출신 목사와 벗하면서 평민들의 교회 지하실에서 새 하늘을 도모했다. 백지 위임장 (헤이그 외교독립운동)을 받을 정도로 황제와 가까우면서도 정작 공화주의자였고, 조국과 겨레를 한없이 사랑하되 주인 없는 공평한 세상, 더 많은 자유를 만인이 누리는 현실을 꿈꾼 거침없는 아나키스트였다.(이회영 기념관 홈페이지 복사)

이회영 기념관의 지금 "특별 전시"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 전시회"이다.

유관순 열사, 이은숙(이회영의 부인.서간도 시종기 저자) 등 여성 독립투사들의 육성(물론 성우들의 대역).

지하에서 지상으로 들리는 피맺힌 절규와 간절함.


갑자기 애국심이 솟아오르는 기분은 이상룡, 이회영 독립지사 두 분이 가진 공통점 때문이다.

1. 두 분 모두 이씨 왕가는 아니다. 가문 전체가 독립운동

2. 당대 최고의 명문가. 그리고 엄청난 자산가.(굶어 죽을 정도의 가난.고난의 투쟁)

3. 1910 한일합방 즉시 전재산 처분, 모든 가솔 거느리고 만주 행), 개간사업

4. 최고 유학자였지만, 과감히 신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임

5.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한 무력 투쟁

6.독립을 못보고 순국, 나중에 유해를 모셔 옴.... 끝없이 많다.

평소 내 살기 바빴던 여행자가 갑자기 "애국심 오버"는 재미없는 일이겠다.

그래도 두 분에 대한 여행은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삼성 강북병원 안 뜰의 경교장에도 들렀다.

우리 근,현대사의 명암이 가장 교묘하게 엇갈리는 곳. 또는 그 때.

이 건물이 한 친일인사 개인의 저택이었다는 점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겸 백범의 거처였다는 점.

대만과 베트남 대사관이었고, 고려병원 영업 건물이었다는 점.

백범이 안두희의 총격으로 돌아가신 방, 피투성이 저고리, 깨진 유리창....

건물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기구하고 파란만장이 따로 없다.

거기 관리인이라는 분께 물었다.

"누가 어떤 세력이 안두희의 배후 일까요?" 내가 생각 해도 답 없을 물음이다.


오늘 여행은 손바닥 안의 작은 공간을 아주 숨차게 경황없이 돌아친 일정이었다.

사직공원과 신문로 사이. 아니면 경북궁 및 광화문과 독립문사이.

여기서 시간적으로 이어지며 흘러오고 간 역사는 조금 혼돈스럽기는 하지만, 재미있고

유익한 여행지 아니었나 싶다.


여행메모

여행일자 : 2025.08.17 일요일

교통편: 독립문역 3출구 - 월암공원(도성 순성길 시작) -이회영 기념관- 사직공원-삼상병원

순회 5번 마을버스 유용)

서울 역사 박물관 "총무령 이상룡 전"은 8월 31까지

우당 (벗 집)이회영 기념관은 홈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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