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29분. 띠딕!
기계음이 주는 묘한 안정감. 오늘도 무사히 출근했다. 오랫만에 출근길 스마트오더로 바닐라 라테를 주문했는데 점심시간이라 카페에 사람이 많았다. 취소도 못하는 바람에 기다리다가 아슬아슬하게 출근 시간 안에 도착했다.
일을 시작하고 2달 동안 꼬박 주 5일 내내 바닐라 라테를 마셨다. 아침밥이기도 했고 점심밥이기도 했다. 4시쯤 밀려오는 허기를 채워줄 간식이기도 했다. 출근길에 한 잔 사두면 5시간에 걸쳐 야금야금 마셨다. 낮시간을 버티려면 이게 꼭 필요했다.
출근 전에 밥을 챙겨 먹으면 되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과민성대장이라 아침밥은 잘 먹지 못했다. 수영이나 책모임을 가는 날이면 겨우 9시 쯤 식빵 한 조각을 먹고 6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별일이 없는 날에도 11시쯤 밥을 먹고 퇴근하는 6시까지 버티는 건 마찬가지였다. 4시만 되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7시쯤 집에 도착하면 저녁밥을 지으면서도 재료들을 계속 집어 먹었다. 허기가 지고 기운이 없었다.
간식이 있어도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여유도 없었다. 쉴 수 있는 공간은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지만 자리를 비워놓기가 어려웠다. 어린이들이 많은 공간에서바스락 거리며 혼자 간식을 먹는 것도 마음이 쓰였다. 얼마나 먹고 싶을까 싶어서 말이다.
야근을 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어서 초반 업무에 적응할 때는 밀려드는 일을 처리하느라 짬을 낼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닐라 라테다. 달달해서 기분도 좋아지고 굶주린 배도 든든하게 채워 주었다.
그 날은 책모임을 하고 바로 출근한 탓에 아침, 점심 모두 먹지 못했다. 바닐라 라테를 마셔도 배가 고픈 그런 날이었다. 이용자 한 분이 바스락 거리는 봉투를 투명한 가림막 구멍으로 쓱 밀어 넣었다. 드세요
작은 팥빵이 8개 들어있었다. 포장지를 벗겨 레인지에 데우고 식지 않도록 묶어오신 것 같았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냄새도 나지 않는 찐빵. 내가 자리에서 먹을 수 있는 간식으로 골라오신 게 분명했다. 따뜻한 찐빵으로 마음을 데우고 배를 채웠다.
일하는 시간이 짧다고 관계까지 얕은 건 아니었다. 날마다 같은 공간에서 5시간씩 일하며 쌓인 시간만큼 관계의 폭과 깊이도 더해지고 있었다. 이름과 얼굴이 익숙해졌고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날씨나 안부를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다.
책을 나누며 삶을 나누다 보니 툭하고 간식거리 하나쯤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 뒤로도 가림막 구멍으로 여러 가지 간식이 오고 갔다. 시골에서 보내온 귤(건조한 실내에서 찬기운이 가득 담긴 귤을 먹으면 기운이 솟는다.), 동네 맛집에서 산 쿠키(아이가 전화를 많이 쓴다며 고맙다고), 주머니에서 꺼내 주시는 사탕(내가 달달한 걸 좋아하는 줄 아는 분), 정갈하게 담긴 수박과 크림 가득한 도너츠도 있었다.
이용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간, 4시. 간식거리를 하나씩 먹는다. 오늘은 복지사 선생님이 간식이 한가득 담겨있는 봉투를 주고 가셨다. 음료수, 에너지바, 샌드위치까지 들어있다. 일주일쯤 이 간식들로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4시쯤 밀려오는 피곤함과 허기짐을 달랠 수 있는 건 달달한 간식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공유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달달한 간식과 함께 5시간만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