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의 편지] 이야기 아홉
그때 나는 불현듯 스물한 살 때 자살 기도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나는 눈이 다 녹지 않은 한겨울의 야산을 맨발에 반팔을 입고서 네 시간이나 헤매었어. 발은 차갑지도 아프지도 않았고 머리는 몇 번이고 커다란 나뭇가지와 바위들에 부딪혔어.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어. 어차피 나는 곧 죽을 몸이었으니까.
어째서 그 아득히 먼 반전된 계절의 기억이 한여름의 오늘에 겹쳐진 걸까.
나는 그날 산에서 내려와 경찰차로 파출소까지 옮겨져 순경이 준 외투와 양말을 입고서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쇼파 위에서 새벽까지 잠을 잤었다.
그날이 오늘과 유일하게 달랐던 건 오늘의 나에게는 집이 있다는 것뿐이었어. 나는 문을 열어젖히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서 세탁기 안에 넣고 빨간 약을 먹은 후에 양쪽 팔에 번갈아 자해를 했다.
나는 한 달 전부터 약을 먹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내가 이미 미쳐버리지는 않았었을까 궁금해하곤 했다. 하지만 이로써 모든 게 분명해졌어.
나는 이미 미친 사람이다. 해리나 자아 분열을 겪지 않았다고 해서 미치지 않은 건 아니야. 나는 이미 미쳤고 그래서 약을 먹는 것뿐이다. 약을 먹지 않으면 내가 미쳤다는 것조차 모르게 되어버릴 테니까.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그래.
의사는 해결책을 쥐여주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의 존재라는 게 이렇게나 무력하다면 모든 게 이대로 완결되길 바라는 것도 차라리 용서될 만한 일이겠지.
오늘 발작이 있기 전의 회기에서 나는 의사에게 자해는 덜 하게 되었지만 자살은 더 자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는 동요하지 않았어.
어쩌면 나를 뺀 모두가 이미 이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해 놓은 건 아닐까. 오직 나만이 아직도 이 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는 거야. 사 년 전 아무도 찾지 못할 야산의 바위 아래서 땅을 파고 흙과 나뭇잎으로 내 몸을 스스로 묻었던 그날의 나처럼.
나는 그 뒤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약을 먹고 의사를 만난다는 것 말고는.
꿀꺽. 생각이 멈춰.
하지만 마음은 멈추지 않고 발 끝으로 녹아내려. 내가 아직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걸 안타까워하기라도 하는 듯이.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조차 잊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래도 죽을 수 있는 목숨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장 마지막으로 하고선 이윽고 망각하게 될 날이.
삼 년 전 여름으로부터.
추신.
당장 내일 죽어도 좋다던 용기와 기개는 다 어디로 갔지. 혹시 너는 오늘과 내일 사이에 무한한 시간이 흐른다고 잠정적으로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 그러나 미혹한 아이야. 세상은 그따위로는 흐르지 않는다. 사실 너도 어렴풋이나마 알지 않느냐.
술에 취해서는 글을 쓰지 않겠다던 기상은 다 어디로 갔지. 그러나 지금 너를 보거라. 눈을 시뻘겋게 뜨고서도 시컴시컴한 이 시야를 가지고서 기를 쓰고 글씨를 눌러쓰는 지금 너를 봐라. 그는 지금 어디로 갔지. 지금 네가 알고 있는 그 어딘가에는 없는 그가 아니겠느냐.
이름조차. 얼굴조차 모르는 이의 노래를 들으며 울먹이는 너는 그때의 너와 얼마나 다르냐. 그러나 얼마나 닮았느냐.
사람은 참. 불쌍하게도. 비루하게도. 변하지 않는다. 슬픈 일이 아니냐.
무방비하게 맞이한 죽음을 너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세상은 그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너의 이카루스가 날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위선이다. 혹은 비열한 연막의 연장선이다. 고작 그 정도로 너의 윤곽을 가릴 수 있으리라고 믿느냐.
너의 이카루스는 날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모두 너의 탓이다. 세상을 탓하지 마라. 그러한 세상을 만든 것이 곧 너다. 이의가 감히 있느냐.
너의 장례식에서 울어줄 사람이 없다고 징징대지 마라. 슬퍼하지도 마라. 모두 너의 과오다. 네가 그러한 삶을 살아온 탓이다. 네 족적을 네 스스로 지우며 살아놓고서 감히 그것이 견디기 힘들다 토로하지 마라. 모두가 주어진 대로 살아간다. 주어진 길에서 이탈한 채로 살아간다면 그 또한 너의 몫이다. 그 누구도 대신해서 짊어지지 않는다. 그런 법은 없다. 세상은 그렇게는 작동하지 않는다. 너도 알지 않느냐.
안식처는 없다. 어젯밤 잠결에 아무 종이에나 휘갈겨놓은 글씨에서 나는 겨우 이것을 하나 건져놓는다. 대견한 일이다.
안식처는 없다. 그러나 나머지는 뭐라고 쓴 것인지 모르겠다. 보나마나 슬픈 이야기일 것이다. 허무할 정도로 눈물이 자욱할 이야기일 것이다. 그것이 뭐 대수인가. 별것 아니다. 어차피 목숨이 다하면 타들어갈 혼잣말. 아무도 그것을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안식처는 없다. 어쩌면 이것이 전부다. 어쩌면 가장 정직한. 내 삶의 훌륭한 축약이다. 다른 지리멸렬한 수사가 구태여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다만 이런 것이다. 이런 가당찮은 회한의 외마디 속에서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초라한 자아. 내가 고통의 불구덩이에 떨어질 때마다 하등 무의미한 수천 년 전 그리스인들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도 결국은 어린 시절의 잔상이 여전히 내 눈가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수백 번을 닳고 닳도록 읽었던 유년의 일리야드. 몇 년이나 그것을 일야리드라는 이름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것. 부끄럽지만 그것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목구멍의 타르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는다. 도대체 책 한 권 속에 새겨진 문장 하나하나를 달달 외우던 그 집념으로 정작 그 책의 이름 하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은 누구를 위한 기만인가. 그러나 실제로 그러했다. 세상은 그렇게나 불가사의하다. 이성으로. 논리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분석할 수 없다. 그것이 세상이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의 전부였던 유년의 거의 모든 것이 그러했듯이. 그럼에도 온전한 모든 것이 되지 않아서 숨이 붙은 채로 이제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내 삶이 그러했듯이. 그것은 불가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날의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것을 오늘에서야 나는 들었다.
너무 늦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뻔뻔함인가. 이기심인가. 아니면.
단지 살고 싶다는 열망인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넘어서야 하는 세상에서는 누구나가 쉽게 미아가 된다. 그러니 나만이 아닐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나의 이카루스만이 날지 않는 것이 아닐 거라고. 태양이 두려워서 녹아내리길 거부한 이카루스. 그러나 그림자의 품 안에서도 결국엔 썩어갈 날개였음을 그는 몰랐을까. 혹은 단지 태양만이 두려웠을까. 어둠의 부패에는 필히 벌레들이 따르니까. 그들로나마 외로움을 잊고 싶었을까. 그 또한 물론 나쁘지 않다. 그를 단죄할 자격 같은 건 나에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이해하면서도.
사실은 나는 한 번쯤은 태양 아래에 있고 싶다.
나를 녹일지라도. 설령 내가 그것밖에는 안 되는 존재일지라도. 그런 것이나마 증명할 수 있게.
무언가 단 하나라도. 증명하고서 죽을 수 있게. 비록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너무나도 초라한 발버둥일지라도.
울지 않는 가엾은 이카루스. 너의 눈물자국은 이미 오래전에 지워졌다. 그러나 너의 진심을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더라도. 그럼에도. 누군가는 너로 인해 변화했으면 좋겠다고. 그게 누구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제발 부디 너라는 사람이 있음으로 그의 마음이 조금은 더 따뜻한 쪽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고. 너는 그렇게 바라며 살아온 것이다. 비록 너는 차갑고 축축한 이곳에 남아 눈물의 상흔과 함께 최악으로 치달아 죽어갈지라도. 누군가는 그의 반향으로 찬란해지기를.
위선이 아닌. 진정한 선을 마침내 단 한 번이라도 이룰 수 있기를.
너는 간절히도 바라왔던 것이다.
안식처라곤 없는 외로운 이카루스.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고 심판을 당하는. 매 숨결의 모퉁이에서 미치도록 시달리는 가엾은 나의 이카루스. 그러나 너 아직 미치지 않았다면 너의 기억이 오직 너에게만 남을 것이라고 감히 예단하지 마라. 비록 이 생에서 닿지 못했을지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그 어느 세월의 굽이에서는. 반드시 따뜻한 햇살의 일부로 그 누군가에게라도 비칠 것임을. 의심하지 마라.
그것이 오늘의 너를 살린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너의 선이리라는 것을. 바로 그것을 나는 간절히도 바랄 것이다.
너의 이카루스가 비로소 삶을 되찾을 언젠가의 그날을 위하여. 그것을 위하여는 나는 꼭 그 삶이 나를 지나치지 않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