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혀진 아이

세계를 너무 먼저 통과해버린 유년

by 박온유

나는 선교사의 딸로 일본 도치기현 이와후네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에 한국으로 왔다.

이 이동은 내 삶에서 특별한 사건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렇게 이어졌을 뿐이다.


우리 집에는 사진이 없었다. 인형도 없었고 TV도 없었다.

아버지는 지독한 원리주의자였고, 사진조차 우상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대신 집에는 책이 있었다.

책만은 제한이 없었다.


집에서 가장 큰 공간은 서재였고, 그 안에는 종교 서적과 문학 전집,

두꺼운 양장본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음악이라고 해봐야 CCM 카세트테이프와 찬송가, 학교에서 배우는 노래가 전부였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우리 자매는 자연스럽게 책벌레가 되었다.

우리는 경쟁하듯 책을 읽었다.

놀이가 없었기 때문에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었다.

성경을 읽고, 어린이 문학을 읽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왔다.


나는 열한 살 무렵, 그 시점에 발행된 거의 모든 어린이용 책을 읽어버렸다.

더 이상 새로 읽을 것이 없다는 감각을 그 나이에 처음 알았다.

유일하게 새로 들어오던 텍스트는 ‘새벗’이라는 기독교 단체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였다.

그것마저 익숙해지자 나는 아버지의 서재로 이동했다.


연령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두꺼운 문학 양장본과 대학생용 20권짜리 종합대백과사전이 내 앞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읽었다. 이해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읽는 행위 자체가 유일한 낙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읽게 된 『데미안』은 충격이었다. 동시에 희망이었고, 동경이었다.

나는 그 세계에 끌렸다.

데미안과 아프락사스는 내 우상이 되었다.

반면 『파우스트』는 이상하리만큼 평범하게 느껴졌다.

나는 파우스트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너무 많은 질문을 통과해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아직 아무것도 겪지 않았는데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읽어버린 아이였다.

세계의 잔혹함, 선과 악의 불분명함, 구원이라는 개념의 불완전함을 실제 경험보다 텍스트로 먼저 알았다.

그 인식은 축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주라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나는 그 나이에 맞지 않는 속도로 세계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나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정상적인 궤도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조용히, 아주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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