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가 된 트럼프

그는 가장 유치하고 무능한 지도자로 기록에 남을 것이다

by 박온유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인접 국가인 캐나다는 물론이고 그린란드, 쿠바, 베네수엘라까지

마치 자기네 땅인 양 '미국 지도'라고 올린 건, 국제 사회의 상식과 주권을 정면으로 조롱하는 행위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울린 총성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 소리는 한 도시의 사람들 사이를 가른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의존해 온

질서의 얇은 막을 찢었다.
알렉스 프레티의 죽음은 우발적 충돌도, 불행한 사고도 아니다.
헌법을 자처해 온 국가가 스스로 절차를 건너뛰었을 때, 그것은 분명한 신호였다.
법이 더 이상 가장 먼저 도착하지 않는다는 신호.


미국은 오랫동안 자신을 ‘예외’로 규정해 왔다.
자유를 수출하는 국가, 인권의 최종 보증인, 민주주의의 기준점.
그러나 예외주의는 언제나 위험한 두 얼굴을 가진다.
지켜야 할 규칙을 세우는 힘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으로 바뀌는 순간,
그 국가는 규범의 수호자가 아니라 균열의 기원이 된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다.
사법 절차가 사라진 자리에도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장도, 재판도, 판결도 없이 시민이 사망했을 때
국가는 최소한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침묵은 선택되었고, 그 침묵은 전 세계로 번졌다.

“너희도 하잖아.”
이 문장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가장 기다려온 면죄부다.
미국이 절차를 무너뜨리는 장면은 단지 국내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인권은 보편 규범이 아니라 선택적 수사로 전락한다.

이제 억압은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안보를 위해 그랬다.”
“우리도 위기 상황이었다.”
미국이 사용한 언어는 곧바로 복제된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식 정치의 핵심은 분명하다.
공포의 관리다.

위기를 만들고, 위기를 과장하고, 그 위기 속에서 모든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 방식은 국내 이민 단속에서 시작해 외교 무대로 확장된다.


캐나다와 그린란드를 향한 압박은 외교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주권 있는 주체가 아닌,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다.
관세 위협, 인수 발언, 안보 강요.
모두 다른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태도에서 나온다.
규칙보다 기분이 우선하는 정치, 협상보다 위협이 앞서는 권력.


특히 그린란드 인수 발언은 단순한 허풍이 아니다.
주권을 사고파는 물건처럼 말하는 순간, 국제 질서는 계약이 아니라 힘의 장터로 변한다.
이웃 국가조차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곧 세계를 향한 메시지가 된다.
“강하면 된다.”

문제는 여기에 기술이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민 단속 시스템, 감시 데이터, 무장 집행력. 이 세 가지가 만나면 폭력은 속도를 얻는다.
속도를 얻은 폭력은 질문을 지운다.
확인할 시간도, 의심할 여지도 없이 인간은 ‘시민’에서 ‘처리 대상’으로 전환된다.

이 구조는 미국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효율적인 폭력은 언제나 수출된다.
오늘은 이민자, 내일은 시위대, 그다음은 불편한 시민.
기술은 중립적이라는 말 뒤에서,
국가는 점점 더 빠르고 조용하게 사람을 지운다.

그래서 이 글은 국제 정세를 말하지만, 결국 사람 이야기다.

한 국가의 오만한 결정 하나 때문에
국경 너머 어딘가에서 잠을 설칠 평범한 사람의 몸.
뉴스 속 숫자 뒤에 숨겨진 떨리는 호흡.
그것이 이 사안의 중심이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울린 총성은 이미 국경을 넘었다.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는 팽팽하게 당겨져 있고,

그 위에서 세계는 균형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이것을 기록하는 이유는 분노를 증폭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름이 지워지기 전에, 의미가 흐려지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정확히 말하기 위해서다.


법이 침묵할 때, 소리는 남아야 한다.

그 소리를 기억하는 일이,
지금 우리가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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