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심함이 너의 부재를 만날 때
나에게 죽음은 두 개의 얼굴로 찾아온다.
하나는 나를 향한 지독한 무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너를 향한 처절한 통증이다.
나는 나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죽음은 두렵지도, 애달프지도 않다.
최저 시급으로 몸을 비틀며 살아가는 내 일상이 아무리 고단한들,
나는 나 자신을 ‘가엾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에게 삶이란 그저 견뎌야 할 형벌 같은 것이기에,
이 형벌이 끝나는 날이 온다 해도
나는 기꺼이 그 문을 열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의 죽음은 나에게 그토록 가볍고 무심하다.
하지만 나의 시선이 내가 사랑하는 '너'에게 머무는 순간,
그 무심함은 날카로운 얼음 가시가 되어 내 심장을 찌른다.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누군가의 사라짐 앞에서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린다.
나는 종종 전화기 속 이름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목소리가 그리워 전화를 걸지만,
내 안의 배려는 늘 나를 주저앉힌다.
다들 각자의 짐을 지고 바쁘게 살아가겠지 싶어,
다섯 번의 신호음이 지나면 서둘러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다.
혹여 내 그리움이 너의 고단한 오후를 방해할까 봐,
내 안부가 너의 쉼을 흩뜨릴까 봐 서둘러 도망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은 배려 끝에 찾아오는 정막은 잔인한 공포가 된다.
연결되지 않은 그 짧은 신호음의 끝에서 나는 너의 죽음을 예감한다.
'혹시 아픈 건 아닐까,
혹시 지금 이 순간 생의 마지막 강을 외로이 건너고 있는 건 아닐까.'
불통이 반복될수록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좁은 방 안의 공기는 희박해져 나를 질식시킨다.
이제 내 곁에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이들이 더 많다.
그들의 시간은 모래시계 속 모래처럼 속절없이 빠져나가고,
나는 그 소리 없는 낙하를 온몸으로 들으며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전화기가 무섭다.
어느 날 새벽,
잠결에 들려오는 진동 소리가 안부가 아닌 '부재'의 선언일까 봐,
내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너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될까 봐.
나 자신을 향해서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으면서,
너의 이름 앞에서는 온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울음을 토해내는 이 모순.
이것이 내가 인간으로서 남겨둔 마지막 숨구멍이자,
가장 아픈 너를 지켜주고 싶은 나의 가련한 사랑이다.
누군가의 생존을 확인해야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나의 밤.
오늘도 나는 다섯 번의 신호음 뒤에 숨어,
네가 여전히 이 세상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기를 간절히 빌며 전화를 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