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의 노래가 생각나는 토요일
지금의 세계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건
어쩌면 내가 지나온 시간의 기억이 지워지는 모습을
그저 눈앞에서 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길을 오래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열일곱 살 때부터였다.
그때의 나는 이 길을 걸어 다니지 않았다.
아침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콩나물 버스 안에 서서
창문 너머로 이 길을 지나갔다.
사람들 어깨 사이에 끼어
손잡이를 잡고 몸을 버티고 있으면
버스 창문 밖으로 같은 풍경이 천천히 흘러갔다.
오래된 건물들이 길을 따라 이어져 있었고
벽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어떤 창문은 늘 반쯤 열려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
그 풍경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매일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길.
학교로 가는 아침의 일부.
열일곱 살의 하루는
대체로 풍경보다
자신의 하루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건물들을
본다기보다
그저 지나갔다.
버스가 천천히 움직일 때마다
창문 밖의 벽과 창문들이
조금씩 뒤로 밀려났고
나는 그 사이에서
그저 다음 정류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더 이상 그 버스를 타지 않게 되었다.
학교도 졸업했고
도시의 다른 길들을 더 많이 다니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운전석에 앉아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가끔 이 근처를 지나게 되면
나는 이 길을 알아봤다.
버스 창문 너머로 보던 그 건물들.
조금 낡았지만
묘하게 오래 남아 있던 벽들.
도시는 계속 바뀌고 있었지만
이 블럭만큼은 꽤 오래 그대로 서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막연하게
이곳은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특별히 지켜지는 장소도 아니고
도시의 자랑이 될 건물도 아니었지만
그냥 오래 있었던 자리.
도시에는 가끔 그런 곳이 있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풍경.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오늘 이 길을 지나온 것도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예전처럼 버스 창문 너머가 아니라
내 차 안에서
이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열일곱 살의 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 안에서
이 길을 바라봤고
오늘의 나는
운전석에 앉아
같은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차를 움직이다가
나는 잠깐 속도를 줄였다.
익숙한 풍경이
어딘가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 길의 한쪽을 채우고 있던
건물 한 블럭이 사라져 있었다.
벽과 창문들이 이어져 있던 자리에는
이제 흙과 자갈이 드러나 있었고
붉고 흰 플라스틱 차단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잠깐 그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버스 창문 너머로 보던 풍경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도시는 늘 바뀐다.
낡은 건물은 결국 사라지고
그 자리에 더 새로운 건물이 올라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개발이라고 부른다.
더 깨끗한 건물,
더 넓은 공간,
더 효율적인 도시.
그 방향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끔 이런 장면 앞에 서 있으면
이상한 감정이 남는다.
건물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의 일부가
풍경과 함께 지워진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열일곱 살의 나는
콩나물처럼 붐비는 버스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저 건물의 이름도 몰랐고
저 벽이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매일 같은 길을
지나갔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시간들이 이 풍경 안에
조용히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차 안에서 그 자리를 지나가면서
나는 잠깐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버스 창문 너머로 보던
그 건물들이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그 시간들이 이제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아마 곧
이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올라올 것이다.
사람들은 그 건물 안에서
다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시간을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기억을 쌓을 것이다.
도시는 그렇게 계속 이어진다.
열일곱 살의 내가
버스 안에서 바라보던 길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새로운 풍경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차 안에서 잠깐 속도를 늦췄다.
버스 창문 너머로 지나가던
그 오래된 건물들이
여기 있었음을
내가 그 시간을
분명히 지나왔음을
잠깐이라도
기억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