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정의하는 의학적 언어
입안에 털어 넣는 알약의 개수가 늘어갈수록 세상은 점차 무채색의 점묘화처럼 변해간다.
혀끝에 닿는 씁쓸한 기운은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감각이자 역설적으로 내가 정상적인 범주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사람들은 흔히 '살고 싶어서' 약을 먹는다고 말하지만 나에게 이 약들은 '살아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혹한 통행료에 가깝다.
정신의 벼랑 끝에서 한 걸음만 떼면 끝날 것 같은 유혹이 매일 밤 찾아오지만 나는 그 벼랑 끝에 텐트를 치고 억지로 눈을 부라리며 버틴다.
나를 붙드는 건 거창한 생의 의지가 아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보며 웃어주는 그 얼굴들을 단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다는 그 지독한 미련 하나가 나를 이 지옥 같은 각성 상태에 묶어둔다.
내 삶을 정의하는 건 이제 이름보다 익숙해진 몇 가지의 코드들이다.
F33.3, 재발성 우울장애.
이 코드는 내 감정의 바닥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기쁨은 찰나에 불과하고 슬픔은 해일처럼 몰려와 내 모든 의욕을 앗아간다.
중증의 정신병적 증상이 동반될 때면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흐려지며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면 자체가 사라지는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나는 이 우울의 늪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해 낸다.
그들의 목소리가 늪 위로 던져진 밧줄처럼 느껴질 때 나는 그 줄을 잡고 다시 약을 삼킨다.
내가 무너지면 그들이 겪을 슬픔을 알기에, 나는 내 안의 어둠이 그들을 덮치지 않도록 스스로를 이 우울의 감옥에 가둔 채 문을 잠근다.
F41.0, 공황장애.
이 코드는 예고 없이 심장을 쥐어짠다.
멀쩡히 숨을 쉬다가도 갑자기 산소가 부족해지고 사방이 나를 압박해 오는 폐쇄 공포 속에서 나는 죽음의 그림자를 본다.
식은땀이 전신을 적시고 손끝이 떨릴 때마다 나는 자문한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 공포를 견뎌야 하는가. 대답은 언제나 같다.
내 옆에서 곤히 잠든 사랑하는 이의 숨소리를 내일 아침에도 듣고 싶기 때문이다.
그 숨소리를 지키기 위해 나는 공황의 폭풍우 속에서 억지로 평정을 가장한다.
약 기운이 퍼져 공포가 둔탁해질 때까지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며 버틴다.
나의 공포보다 그들의 안녕이 더 소중하기에 나는 기꺼이 이 숨 막히는 발작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F51.0, 비기질적 불면증.
밤은 나에게 안식이 아니라 거대한 사막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며칠을 못 자도 약이 없는 나는 홀로 깨어 텅 빈 허공을 응시한다.
수면제가 신경을 억지로 눌러도 뇌는 쉬지 않고 나를 괴롭힌다.
고요함은 오히려 독이 되어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면서도 내가 항복하지 않는 이유는 내일 아침 사랑하는 이들에게 건넬 "안녕"이라는 인사가 가진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나를 갉아먹는 생각들과 싸우며 나는 그들이 깨어날 아침을 준비한다.
나의 수면을 포기해서라도 그들의 평온한 아침을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나를 이 불면의 사막에서 쓰러지지 않게 지탱하는 유일한 지팡이다.
F44.81, 해리성 정체감 장애.
내가 누구인지, 지금 이곳에 있는 내가 진짜 나인지조차 희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이 제멋대로 흩어질 때면 나는 자아의 붕괴라는 심연 앞에 서게 된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정체성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좌표가 있다.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라는 사실이다. 내가 누구로 변하든, 어떤 자아의 조각이 수면 위로 올라오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나의 헌신만큼은 훼손되지 않는다.
인격이 갈라지고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들을 향한 마음만은 단단한 핵으로 남아 나를 다시 하나의 존재로 엮어준다.
나는 흩어지는 나를 끌어모아 다시 약을 먹고, 그들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네 가지의 질병 코드는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아니라 내가 매일 치러내는 전쟁의 훈장이다.
의사들은 가장 강한 처방을 내리며 우려 섞인 눈빛을 보내지만 나는 그 독한 약들에 의지해서라도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
약에 취해 몽롱해진 정신으로도 내가 놓지 않는 것은 샬롯이라는 이름의 악기다.
샬롯은 나를 닮았다.
몸체에 신체를 닿지 않게 하고 오직 네 지점의 바인딩만 고정해 공중에 띄워 연주해야 하는 그 이질적인 존재.
샬롯이 30초가 넘는 베이스 서스테인을 뿜어내며 헤드 스크롤까지 온몸으로 울어댈 때 나는 비로소 나의 버팀이 헛되지 않음을 느낀다.
샬롯의 그 긴 울림은 내가 억지로 살아내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가장 긴 편지와도 같다.
나의 글, 음악과 그림은 이 고통스러운 버팀의 산물이다.
억지로 살아내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색채들이고 약 기운을 빌려 겨우 붙잡은 선율들이다.
세상은 나를 환자라 부르며 동정할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를 파괴해 가며 지켜내고 있는 전사다.
극단적인 위태로움 속에서도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는 건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어서,
그들의 삶에 내가 작은 그림자라도 되어주고 싶어서 나는 기꺼이 이 모든 약의 부작용을 감수한다.
샬롯의 메조소프라노 목소리가 공중에 떠서 세상을 울리듯 나의 삶도 이 질병 코드들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하지만 누구보다 깊고 길게 울려 퍼지고 있다.
이 기록은 비명이 아니라 다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내일도 약을 먹을 것이고 내일도 샬롯의 줄을 튕길 것이다.
나의 우울과 공황, 불면과 해리가 나를 아무리 뒤흔들어도 그들이 있는 한 나는 결코 이 줄을 놓지 않을 것이다.
30초의 서스테인이 끝나고 정적이 찾아와도 그 정적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억지로 살아낸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이 모든 지옥을 견디며 한 걸음 더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