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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레몬 Apr 03. 2024

운칠기삼 vs 경적필패

[이번 생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나는 불량 직장인이다.

최선을 다하진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은 책임감+양심은 있는 편이라 맡은 바는 하려고 한다.


누구는 100% 목표에 늘 도달하려 노력한다는데

나는 내가 생각했던 목표치의 70~90% 정도만 되면 나머지는 되어 가는 대로 두고 보는 편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러니 저러고 살지... 쯧쯧' 할 듯싶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많이 애쓰지 않고 일을 슬렁슬렁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일을 쉽게 하는 것 같다'라는 얘기를 간혹 듣는데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나의 업무 스타일이 이렇게 잡힌 데는 갔다 붙일 핑곗거리가 여럿 있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자면

첫째 '그렇게 애를 써도 결국 100% 완벽한 결과는 안된다'라는 깨달음과

둘째 내가 나를 볶아대다 얻어진 공황장애 증상들

셋째 다음 사업진행할 때 심리적으로 리셋되는 업무 속도 등이다.

(앞 사업이 완벽하지 않으면 다음 것이 손에 안 잡히니.. )


실수하고 싶지 않고 잘하는 마음이 클수록

내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지는 경험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욕 안 먹을 선까지가 채워지면 힘을 빼는 습관이 생겼다.(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기에..)


[운칠기삼 運七技三]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성패는 운에 달려 있는 것이지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운이 7할, 기가 3할이라는 뜻

기보다는 운에 달렸다는 이 말이 좋아서

내 책상 앞에 커다랗게 써놓고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내 책상 옆을 지나던 동료가

그 글을 보더니 똥그래진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헐~ 선생님은 진짜 이 말을 믿어요?"

왠지 그 질문이 '아니요!'라고 말해달라는 것 같았지만...

내가 "네"

라고 대답했더니 미간에 인상을 쓰면서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동료가 부르는 곳으로 향했다.

본인 책상 앞으로 데려갔다.

그 동료의 책상 위에는


[경적필패 輕敵必敗]
적을 가볍게 보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말 

적을 가볍게 보지 말고 항상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

라고 쓴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그 글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모든 직원이 인정하는 워커홀릭이다.


자신의 소신 대로 딱 그렇게 업무를 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프로젝트에도 '왜 저렇게 까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열심이다.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해서 동시에 몇 가지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일을 너무나 좋아하고 잘하고 최선을 다했다.


내가 회사 출근하는 이유가 맛점과 수다였다면 그 동료는 오히려 점심도 자주 걸렸다.

내가 야무지게 휴가를 끌어 썼다면 그 동료는 휴가가 너무 쌓여서 총무과에서 제발 좀 쓰라는 얘길 들었다.


"선생님, '운칠기삼'이 뭐예요? 난 그렇게 운에 맡기고 슬렁슬렁하는 사람 정말 별로던데..."

그러면서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난 선생님을 일도 잘하고 괜찮게 봤는데 나랑 너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서 깜짝 놀랐잖아요."

나를 다시 보게 된 듯 얼굴을  뜯어보는 동료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아고, 제가 그래요.  모르셨구나 ㅎㅎ"

나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동료는 '경적필패'의 뜻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사자가 토끼를 얕잡아 보면 놓친다고요. 작은 일도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거예요. 뭐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눈에 열정이 가득한 그녀를 보면서

나는 별 감흥도 반성도 없다.


"와~ 진짜 선생님 대단하세요. 정말 멋져요."(거의 AI스런 대답)

동료에게 쌍 따봉 엄지 척을 보여주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 나도 한때는 '경적필패'의 마음으로 열정 직장인이었던 적도 있었다.

점점 욕심이 생겼고

10할, 100%, 1등으로 달려가면서 그만큼 놓치는 것도  많아졌다.

또  혼자만의 노력으로도 이룬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희생되거나 민폐를 끼쳐야 했다.


시간이 지나니 그 100% 잘했다고 생각한 일도 그리 대단하지도 않았고

그게 계속 유지되지도 않았다.


이제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한다.

그때마다의  타이밍에 맡기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 흐름 속에 생각지 못했던

파장으로 채워지길 기대한다.


나는

오늘도

살랑살랑 놀듯 일하는

불량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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