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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3. 2024

20년 만에 다시시작한 작품 활동에 대하여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 두 번째 인터뷰이  


선량 : 저도 병원 일을 하다가 결혼하고, 애 낳고, 해외생활을 하면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었어요. 집에서 아이들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었지요. 이런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은 저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죠.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하던 엄마들이 출산과 양육으로 경력이 단절되곤 하는데요, 육아휴직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등 옛날에 비하면 육아 환경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런 걸 눈치 보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가 되면 엄마들의 시간이 많아지잖아요. 그때 다시 사회로 나가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사실 쉽지 않죠.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는데 육아로 단절된 경력을 다시 이어 붙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가족,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년 만에 다시 작품을 시작한 이유, 내가 내일 죽는다면?



작가님께서는 20년 동안 전업주부로 지내시다가 다시 작품을 시작하셨는데요, 그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난영 : 다시 작업을 하게 된 시기는 바로 코로나 팬데믹 시기였어요.


선량 : 저희가 그때 인스타그램에서 만났죠?


난영 : 맞아요. 그때 이탈리아가 갑자기 심해지던 때가 있었어요. 날마다 사망자 수가 발표되었는데, 그 죽음이 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제 주변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니까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내일 죽는다면 뭐가 가장 후회될까?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뭘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동안 작업을 다시 시작하려고 생각만 하면서 게으름과 핑계로 지지부진하게 시작하지 못했던 제 자신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았죠. 그때 결심했어요. '하루에 한 장 씩이라도 그림을 그리자!'

특별한 재료를 준비할 겨를 없이 집에서 아이들이 쓰던 크레파스로 종이에 간단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큰 딸이 그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그림을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렸죠. 그런데 몇 달 뒤에 스페인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아트 드로잉 전시회를 하는데 한번 참여해 보라는 말이었지요. 물론 전시비가 무료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전시회가 저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주었어요. 그때 함께 참여했던 작가들 중에 핫하게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이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과 그룹전시도 할 수 있었어요. 그 이후 네다섯 번 정도 전시회를 하면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저에게 다시 재개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어요.

선량 : 저도 그때 집에서 글을 정말 열심히 썼어요. 코로나 시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여러 사람을 일어서게 만든 것 같아요.



작품에 대하여 


작가님의 작품 중에서 박스에 그린 그림을 봤어요. 너무 특이해서 기억이 오래 남는 작품인데요. 그 그림은 어떻게 그리게 되신 거예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난영 : 제가 코로나 때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그때 집에 갇혀있는 동안 남편이 아마존에서 매일 온라인 쇼핑을 하는 거예요. 하루에도 몇 개씩 택배가 왔지요. 박스가 쌓여가는 걸 보면서, 화가 나기도 하면서 '어디 얼마나 많이 오나 보자! '하며 박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일종의 남편에 대한 시위? 였지요. 사실 그 박스가 버리는 게 아깝기도 했고요.

아마존 택배박스에 작품

선량 : 와~ 정말 대단하신데요?


난영 :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요. 조르조 데 기리코( Giorgio de Chirico)라는 화가인데요. 초현실주의 작가예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년 7월 10일 ~ 1978년 11월 20일)는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작가이다. 그는 초현실주의 예술의 초기 단계 중 하나인 형이상학파(metaphysical art)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키리코의 작품에는 타워, 아케이드, 사람이 없는 건물들이 주로 등장한다. 중앙 및 다양한 시점에서 본 공간의 구조가 투영되어 있다. 후기에는 꿈꾸는 듯한 생경한 사물들을 작품 구성에 포함시켜 비현실적인 구도로 배치했다. 대표작으로 〈정물〉,〈무한의 향수〉등이 있다.


이분은 일상에서 우리가 보는 것에 생경한 물건을 둬서 이질적이면서도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는 초현실적인 걸 표현해요. 저도 그런 생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작업을 다시 시작한 때가 코로나잖아요. 내일 일을 아무도 모르는 거죠. 얼마나 막막해요. 세기의 획기적인 변화가 오면서 모든 시스템이 바뀌는 걸 경험했죠.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와는 다른 막막함이 오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먹고살아내기 위한 힘듦, 미디어에서 나오는 공포, 그런 암담한 소리보다 이런 암담함 속에서 느끼는 소망과 희망을 믹싱 한 무언가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그림의 밑바탕에는 그런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회와 인간의 심리를 담았지요.


선량 :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작가님 만의 시그니처처럼 특이한 사람 모양의 캐릭터가 있던데, 그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요?


난영 : 동물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한 그거 말씀하시죠? 사실 그건 의인화를 한 건데요, 그 캐릭터는 최근에 나온 건 아니에요. 제가 도자기를 할 때부터 기존에 있던 사물을 의인화하는 작품을 했었어요. 아마 제 안에 내재되어 있던 게 나온 것 같아요. 이 캐릭터들과 함께 험란한 이 시간, 굴곡진 인생이라는 여정을 여행하는 것이죠.  

선량 : 뭔가 심오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뭔가 손이 가는 데로 막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와 의미를 가지고 작품을 하신다는 게 느껴져요.

작가님의 작품 중에 물감이 흘러내리는 그림을 몇 개 봤어요. 그런 것까지 의도하시는 건가요?


난영 :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흘러내림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번짐과 흐름은 의도하지 않게 발생하는 것이 아름답더라고요. 의도하지 않게 흘러나온 번짐과 흐름을 이용하고 있어요.


선량 : 거기에 글씨도  쓰시잖아요. 한글도 쓰시던데, 그건 어떤 의미인가요?


난영 : 텍스트를 형상화해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영어를 주로 쓰다가 최근에는 한글로 쓰고 있어요. 서양사람들이 봤을 궁금증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죠.

선양 : 그야말로 국위선양 작품이네요.



전시회와 작품 판매


전시회를 하다 보면 작품이 판매되기도 하나요?


난영 : 네. 작년에 아는 지인고  함께 빈티지 팝업스토어를 하러 한국에 갔었는데요, 마침 한국에서 그룹전에 작품을 몇 점 전시해 보라고 연락을 주셔서 전시를 했었어요. 그 후에 감사하게도 개인전 전시회로 초대를 해주셨어요. 사실 개인전을 하려면 1년 전부터 미리 계획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전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시간과 장소가 되어서 전시회를 할 수 있었지요. 그때 제 작품이 판매되었어요.


선량 : 작품이 판매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난영 : 너무 좋았죠. 인스타그램에서 제 전시회가 있다는 걸 보시고 오신 분이 작품까지 사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제 팬이 생겼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좋아해 주는 것도 감사한데 작품을 사주시기까지 했으니까요.

선량 : 내가 쓴 책을 사서 읽어주는 독자를 만난 기분일 것 같아요. 그 기분, 정말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죠.  앞으로도 전시 계획이 있으신가요?


난영 : 7월에 로마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고요, 한국에 가서 또 할 것 같아요.


선량 : 밀라노에서도 꼭 한번 해주세요. 너무 보고 싶습니다.


난영 : 네네. 꼭 하도록 노력해 볼게요. 제가 좀 더 부지런해져야 가능한 일이지만요. 사실 나이가 있으니까 이 일을 지속하려면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시 그림을 시작했으니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고 싶거든요. 제가 도자기도 했었잖아요. 여러 재료로 확장을 해나가야 하는데 지금 딱 그 과도기에 있어요.



작품 활동에 대한 고뇌와 갈등 그리고 비전


선량 : 사람들은 20년 만에 다시 작품을 시작하시고, 전시까지 하시고, 판매도 하셨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난영 : 네, 맞아요. 그런데 더 발전하고 싶은 데 어떻게 발전을 해나가야 할지 그걸 모르겠어요. 딱 과도기에 있는 것 같아요.


선량 : 저도 마찬가지예요. 책을 쓰기 위해 정말 열심히 썼고, 작가가 되었는데요. 지금은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지, 나를 알리려고 글을 쓰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느 순간 글쓰기가 너무 힘들어졌어요.


난영 : 20년 전에도 제가 여러 갤러리를 다녀봤었는데요, 그때는 이곳이 참 배타적이라고 느꼈어요. 지금은 그렇게 배타적이지 않는데 제가 나이가 너무 많은 거죠. 갤러리에서는 20대의 젊은 신진 작가들을 선호해요. 비용도 싸고,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제 그림도 싸지만 제 나이가 많은 것이 늘 핸디캡이에요. 그런 막막함이 있어요. 이걸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 고민하다가 더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20년 전에도 제 작품이 이탈리아에서 판매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어요. 작업을 중단한 이유 중에 하나가 집에 여러 재료와 작품이 쌓이니까 못한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그린 그림도 한계가 생겨 판매에 영향이 있을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어요.



팔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과 또 그렇게 그리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 갈등을 안고 그리고 있습니다.

'이 그림이 더 안 팔려도 나는 나만의 그림을 그린다'

이런 무게감을 가지고 하고 싶은데, 사실 그 결과는 오롯이 나의 몫이니까요. 그게 두려운 거죠.


제 그림에 대한 호불호가 좀 강해요. 집에 걸기에 좋은 그림은 아니라서요. 저는 추상화를 그리고 싶지만, 지금은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을 충분히 그리고 씻겨낸 후에 비로소 진정한 나만의 추상화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사회가 주는 영향으로 인한 개인의 심리, 소비지향적인 사고나 필요. 그런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판매와는 좀 거리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죠. 고민이 되지만 그래도 조금씩 해나가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심난영 작가님의 작업노트


선량 : 저도 비슷해요. 팔리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과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 한다는 마음이 늘 공존해요. 어느 순간 내 이야기를 쓰는 게 너무 소비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때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사시는 분들은 딱 그 안에서 사시잖아요.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딱 정해진 공식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 공식을 벗어나면 큰일 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데 그 사회에서 조금 벗어나도 괜찮다는 걸 한번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밀라노에 여러 모양으로 살고 계신 분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어쩌면 작가님도 저도 그런 과도기에 머물러있는 것 같아요.

나를 위해 시작은 했고, 조금 더 사회에 이로운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난영 : 네. 맞아요. 세상엔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잘난 사람도 많고요. 이 나이에 굳이 나까지 숟가락 얹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공해를 재생산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면 '그래도 꾸준히 죽을 때까지 놓지 말고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요. 그러면서 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일어서고 하는 거죠. 이게 모두 자기와의 싸움인 것 같아요.

선량 : 가족들은 작가님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난영 : 저희 남편은 공업디자인을 했어요. 엘지 핸드폰이나 냉장고를 했었고 지금은 요트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저와는 정반대의 것을 하는 것이죠.

저는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기괴함을 그리는데요, 남편이 왜 이런 걸 그리느냐고 그래요. 그런데 저희 남편이 너무 이상하다고 싫어했던 작품이 한국에서 꽤 인기를 끌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싫어하는 것만 그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선량 : 남편 분이 싫어하면 성공인 거네요?



작품 이야기도 너무 재밌고 작가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재밌는데요, 더 궁금한 것이 있어요. 바로 작가님의 두 따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두 따님이 정말 너무 예쁘게 잘 큰 것 같아요. 물론 작가님께서 그렇게 잘 키우신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자기들 알아서 컸다고 하시지만, 부모님의 영향이 없을 수가 없죠.

큰 따님은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서 미디어 쪽 일을 하고 있고, 둘째 따님은 인스타그램에서 보니까 모델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다음은 가족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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