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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6. 2024

밤의 소리 1.

(단편 소설) 결말은 자유

그날 밤,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들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인 것 같았다. 우르르 쾅쾅 울리는 천둥소리와 새찬 빗소리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들렸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와 아빠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다섯 명의 연예인들이 몸싸움을 하며 억지웃음을 만들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진짜 그게 웃기다는 듯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엄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천둥소리?”

“아니, 무슨 비명 소리가 들렸는데.”

“에이, 무슨 소리야. 천둥소리 때문에 착각했나 보네.”

그때 다시 한번 선명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엄마, 이 소리 안 들려?”

엄마와 아빠는 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여전히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있었다. 30분 후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실로 나가 베란다 문을 열었다. 하지만 빗소리와 사이렌 소리, 사람들의 소리만 들릴 뿐 비와 어둠으로 얼룩진 불빛이 너울거렸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성격이 좀 예민하다는 말을 들었다. 

"네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알아?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정말, 아휴.... 말로 설명도 못하겠어. 지금은 진짜 사람 됐지, 사람 됐어. 네가 하도 많이 울어서 병원엘 얼마나 다녔는지 몰라." 

엄마는 잊을만하면 이 말을 꺼냈다. 내가 너무 울어서 어디 아픈 건 아닌지, 큰 병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하며 개인병원부터 대학병원까지 수시로 다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병원에선, "별 이상 없다."라고 했다. 혈액검사도, 엑스레이 검사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려진 결론이 "남들보다 예민한 아이"였다. 




난 어려서부터 소리를 잘 들었다. 자려고 누워있으면 책상 위에 놓인 탁장시계의 초심이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엔 꼭 시계의 건전지를 빼놓고 잤는데 그래서 아침마다 늦잠을 자곤 했다. 나는 발자국 소리도 잘 들었다. 특히 아빠의 느리고 묵직한 구둣소리와 엄마의 빠르고 경쾌한 슬리퍼 소리를 구분할 줄 알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나뭇잎 사이로 퍼지는 햇살의 소리였다. 그 소리는 새벽녘, 해가 떠오르면서 햇살과 나무가 처음 부딪히며 넓게 퍼질 때 가장 선명하게 들렸다. 그 소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오래된 오르간의 '솔'을 누른 후 30초가 지나면 들리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 먼 우주에서 느끼는 파동의 소리라고 해야 할까? 


내가 햇살의 소리를 언급하면, 

"어머, 정말 시적이다. 커서 시인이 되는 거 아니야? 근데 시인은 밥 벌어먹기 힘들어. 차라기 국어 선생님이 되는 건 어떨까?" 

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물론 또래 친구들에게 이 말을 하면, 

"햇살에 소리가 어딨냐? 사이코패스야? 아니면 환청이 들리는 거야? 미친 거야?" 

하고 말했다. 

딱 한번 내 말을 믿어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별명이 '반찬'이었던 녀석이었다. 본명이 뭐더라.... 무슨 찬이 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 녀석도 좀 이상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매사에 시큰둥한 건 그 나이 남학생들 사이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시큰둥을 넘어 아무런 욕구가 없어 보였다. 한 번은 그 녀석을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말했다. 

"야, 너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냐? 뭔 상상을 하는 거야?" 

내 말에 그 녀석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넌 남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나 보다." 

"어? 어.... 뭐.... 그렇지." 

"그렇군. 사람마다 하나씩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다들 말을 안 할 뿐." 

난 당황하며 되물었다. 

"너도 뭐 있냐?"

"나? 글쎄...." 

녀석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낮에는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양한 소리가 꼬이고 꼬여 오히려 잘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고등학생이 된 후엔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학교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귀는 퇴화되어 가는 것 같았다. 꽉 막혀있는 교실에서는 학생들의 성적과 입시, 등급과 대학에 대한 긴장감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그것이 소리의 파동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늦은 저녁 집에 가서 내 방 침대에 누워있으면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내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어떤 밤에는 너무나 선명한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또 어떤 밤에는 잔잔한 자장가 같은 소리에 단잠을 자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절박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그 소리는 "살려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도와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고3, 수험생이기 때문이었다. 




수능을 100일 앞둔 여름날, 처음으로 사람을 구했다. 

그날따라 머리가 아파 학원을 가지 않았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무슨 소린지 구분하지 못했다. 소리가 너무 흐릿했다. 너무 먼 곳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내내 그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리곤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구해줘.... 제발 구해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작은 골목에 어둠이 짖게 내려앉아 있었다. 

"살려.... 주... 세... 요...." 

그 순간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소리를 무시하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어둠을 비추자 빛의 파장이 퍼지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그 소리에 기대어 나는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헌 옷 수거함 옆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의 옷에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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