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Sep 05. 2024

25. 에필로그

지아의 책상엔 지금 막 출력한 서류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책상 왼쪽엔 목록별로 분류된 서류 뭉치들이 높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지아, 서류 준비됐어?”

“네, 여기 있습니다. 변호사님.” 

“지금 클라이언트 만나러 가는데, 지아 씨 같이 가는 건 어때? 서류로만 보는 거랑 직접 대면하는 건 또 다른 거니까.” 

“아, 저…. 더 봐야 할 서류가 있긴 한데…. 네. 알겠습니다. 함께 할게요.”

“이래서 지아랑 일하는 게 좋다니까. 한 시간 뒤에 나갈 거야. 이따 봐.”

“네. 변호사님.” 



루도비코 변호사가 서류를 들고 멀어지자 지아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놓인 서류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할 일이 태산이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마친 후 다시 밀라노로 돌아온 지아는 변호사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동안 공부한 게 너무 아깝다고 조금 더 해보길 권했지만, 지아는 취직을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다행히도 로스쿨에 다닌 학력과 변호사윤리시험에 합격한 이력 덕분에 변호사사무실 어시스트로 일할 수 있었다. 지아는 사람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변호사 보다 그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어시스트 일이 오히려 더 잘 맞는 것 같았다. 자신이 준비한 서류와 정보로 클라이언트의 재판이 승소했을 때는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안정감이 생긴 지아는 조금씩 주위 사람들을 돌아볼 마음도 생겼다. 키아라의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가고, 아빠와 함께 오페라 공연도 가면서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여유를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아빠가 지아를 불러놓고 말했다. 

“지아야, 이제 엄마 아빠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예상치 못한 엄마의 말에 지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지아의 마음을 알았는지 달이가 지아의 무릎으로 올라와 앉았다. 지아는 달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엄마, 그럼 난?”

“넌 이제 성인이잖아. 엄만 네 나이에 결혼도 했어. 그리고 너도 이제 독립할 때도 된 거 같고.”

“그래서 언제, 어디로 가려고?”

“일단, 직장 정리하고 할머니 살던 집으로 들어가려고. 거기서 좀 쉬면서 한국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구상 좀 해보려고.”

“아니, 이렇게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간다고?”

“뭐, 우리가 계획한다고 삶이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 그동안 밀라노에서 열심히 살았잖아.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나도 고향에서 지내면서 할머니의 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어.” 

완고한 엄마와 아빠의 결심을 지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 지아의 홀로서기가 시작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진우에게서 메시지가 온 건 한 달 뒤였다. 로마의 몰타 기사단의 열쇠구멍으로 본 바티칸 시티 사진이 전송되었다. 너무 놀란 지아가 지금 어디냐고 물었지만, 진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다음 날엔 피렌체 베키오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 지아에게 전송되었다. 하지만 진우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도, 메시지에 답을 하지도 않았다. 다음 날엔 리알토 다리에서 찍은 베네치아의 곤돌라 사진이 전송되었다. 지아는 진우가 먼저 무슨 말을 해주기를 그저 기다렸다. 

삼 일 후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찍은 사진이 지아에게 전송되었다. 지아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지금, 거기로 갈게. 10분만 기다려.]


지아는 사무실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이전 24화 24. 출판 기념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