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Sep 05. 2024

24. 출판 기념회

“지아 씨, 드디어 시집이 나왔어요. 시간 날 때 저희 가게로 한 번 오세요.” 

주연의 연락을 받고 지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2주 만에 시집이 완성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이게 모두 여러 방법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 덕분이었다. 연이어 진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아야, 사장님 연락받았지? 준비하고 있어. 내가 데리러 갈게.” 

지아는 그중에서도 진우의 도움이 가장 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진우는 지아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주었다. 그 사실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진우야, 정말 고마워.”

“고맙긴. 우리 금자 씨를 위한 일인데. 그동안 할머니가 우리 가족들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지금 출발할게.” 




지아의 눈앞에 할머니의 시집이 놓여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의 시집 표지엔 세로로 “그리움을 묻고”라고 쓰여 있었다. 그 옆에 “시인 정금자”라고 써진 글자를 손끝으로 매만졌다. 그저 생각만 했던 일이 이렇게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진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거기엔 할머니의 삶과 사랑, 고뇌와 번민, 그리고 남겨진 이들을 위한 격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정말, 감사해요. 사장님, 그리고 진우야. 정말 정말 감사해요.” 

“아니에요. 저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세상에나, 우리 금자 씨 시집이 이렇게 나오다니. 우리 금자 씨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이 시집을 보셨으면 좋겠네. 이렇게 꿈을 이루셨으니 얼마나 좋으실까.” 

김 작가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에이, 엄마. 왜 울고 그래. 자, 이제 이 시집을 어서 금자 씨에게 전달해 드려야겠죠?”

그때 지아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엄마였다. 지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응? 정말이야? 응. 알겠어. 어. 얼른 갈게.” 

 전화를 끊은 지아의 눈에서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하는 지아를 진우가 조용히 안아주었다. 지아의 손에서 시집이 툭 떨어졌다. 




거울 앞에 선 지아가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린네 재질의 검정 원피스는 생각보다 더 불편했다. 빳빳하게 잘 다려진 옷을 입고 몇 시간만 활동하면 금세 여기저기 주름이 생겼다. 그 주름이 마치 마음에 드리워진 주름인 것만 같아서 지아는 펴지지 않는 원피스의 주름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옷의 주름도, 눈가의 주름도, 마음의 주름도 쉽게 펴지지 않았다. 소용없는 손짓을 여러 번 반복한 후에야 지아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슬플 땐 슬프도록 놔두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지아는 별똥별에 아무런 소원을 빌지 못했다. 할머니가 다시 일어나게 해달라고, 자신이 꼭 변호사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진우의 꿈이 꼭 이뤄지게 해달라고 빌고 싶었지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보다 세상에서 할머니의 별이 사라지는 게 조금 더 빨랐다. 


“지아야, 준비 됐니?” 

방문을 열고 들어온 동주가 거울 앞에 선 지아를 향해 물었다. 

“응, 엄마.”

“시간 다 됐어. 나가자.” 

지아는 동주가 내미는 손을 잡고 작은 방을 나갔다. 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엔 지아가 이미 아는 사람들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아는 동주를 따라 앞쪽에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거기엔 아빠 경석이 앉아 있었다. 경석이 지아의 손을 잡으며 빙긋이 웃었다. 이틀 전에 도착한 경석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서려있었다. 


“자, 시간이 되었으니 모두 착석해 주세요.” 

단상에 선 주연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이 그 소리에 맞춰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준비한 의자가 부족한지 뒤쪽에 십여 명의 사람들은 그대로 서서 앞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정금자 시인의 출판기념회 사회를 맡은 “이주연입니다. 호영리 보리소리 북카페를 운영하고 있고요, 이번 정금자 님의 시집 “그리움을 묻고”를 편집하고 출간했습니다. 그럼 먼저 영상으로 故 정금자 시인의 모습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금자 씨의 젊은 시절 모습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앞자리에 앉아있던 동주는 영상을 보다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썩였다. 경석은 그런 동주의 등을 토닥였다. 지아는 젊은 시절의 할머니가 낯설어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화면 왼쪽엔 금자 씨의 시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진우가 만은 금자 씨의 영상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영상이 너무 감동적이었나 봅니다. 여기저기 울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다들 금자 씨가 너무 그리워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이번 순서는 편지 낭독 시간입니다. 금자 씨와 절친한 사이로 지내셨던 홍덕근 이장님께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홍이장님, 앞으로 나오시죠.”


갈색 체크무니 베레모와 검은색 양복,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홍 이장님은 예전에 비해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지만, 여전히 멋쟁이였다. 코가 빨갛게 변한 홍 이장님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종이를 꺼내 펼쳤다. 

“안녕하십니까, 홍덕근입니다. 아…. 저는 우리 금자 씨와 어렸을 적 친구였습니다. 아…. 물론 제가 금자 씨를 좋아하긴 했습니다마는, 그건 순수한 마음으로 존경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간에 동갑내기 벗들이 모두 떠나고 이제 저 혼자 남았습니다…. 아무튼, 그럼 읽어보겠습니다.” 

홍이장님이 마이크 가까이 입을 가져다 대고 종이에 써온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나의 벗, 금자 씨에게”로 시작한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끝내 듣지 못했다. 홍이장님이 편지 중간부터 통곡을 하고 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자, 오늘은 장례식이 아니라 출판기념회라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비록 이곳이 장례식장이고, 내일이 발인이지만, 생전에 금자 씨께서 바라고 원하셨던 것이 바로, 출판기념회였습니다. 아마도 금자 씨께서 하늘나라에서 흐뭇하게 웃으며 보고 계실 거예요. 금자 씨께서는 생전에 항상 말씀하셨다고 해요. 슬픈 장례식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놀 수 있는 파티를 열고 싶다고 말입니다. 특히 금자 씨의 꿈이었던 시집도 출간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러니 슬픈 마음은 잠시 내려두시고, 우리 마음껏 금자 씨를 축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다음 순서는 금자 씨의 하나뿐인 손녀, 박지아 님께서 쓰신 편지를 낭독해 주시겠습니다.” 


지아는 다시 한번 주름진 옷매무새를 만지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람들 앞에서 편지를 읽는 것이 부끄럽긴 했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정금자 시인의 손녀, 박지아입니다. 제가 할머니게 쓴 편지를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에게 


사랑하는 할머니 

할머니는 나에게 꿈이 무엇인지 가르쳐줬어요. 할머니를 보면서 나도 꿈을 꿀 수 있었어요. 할머니처럼  누군가를 도와주고,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할머니랑 많이 산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와 살았던 3개월은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이탈리아 말로 꿈을 손뇨(sogno)라고 해요. 나는 할머니의 손녀니까 내가 할머니의 꿈이라고 했지요. 그 말이 언제나 기억납니다. 

할머니의 시집을 만들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이 시집을 할머니의 품에 안겨주고 싶어요. 

이 시집 속엔 할머니의 사랑이 담겨 있어요.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했지요. 

할머니는 시를 사랑하고 시를 매일 썼으니, 

당신은 이미 훌륭한 시인입니다. 





할머니에게 시집을 전해주기 직전에 소식을 들은 지아는 망연자실했다. 며칠만 더 빨리 만들었더라면 할머니에게 시집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할머니 시집 출판기념회를 하는 건 어때?”

할머니가 살아생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진우가 꺼낸 말이었다. 

“금자 할머니가 그러셨어. 슬픈 장례식은 싫다고. 탄생의 순간이 모든 사람에게 축복받는 시간이듯 죽음의 순간도 축복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지. 슬픈 일이긴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그런 장례식을 하고 싶다고 하셨어. 외국에서는 그런다며? 장례식장에서 서로 만나서 축복해 주는 그런 거 말이야. 지난번에 구옥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할머니가 말씀하셨거든. 난 이런 장례식 싫다고.” 

진우의 말을 들은 지아는 엄마, 아빠에게 할머니의 뜻을 전했고, 장례식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으니 장례식장에서 시집 출판기념회를 함께 하기로 한 것이었다. 



지아가 낭독을 마친 후 눈물로 가득 찬 눈을 들었다. 저 뒤쪽에 간호사 옷을 입은 사람이 서서 지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낯이 익은 것 같았지만, 누군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지아가 단상에서 내려가자 주연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다음은 김은희 작가님의 시낭독이 있겠습니다. 김은희 작가님은 십여 년 전 고 정금자 님께서 참여하셨던 구진군청 시교실의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당시 함께 시를 쓰며 시인의 꿈을 꾸셨던 고 정금자 시인을 떠올리며 자작시를 낭독해 주시겠습니다.”


주연의 소개에 김작가가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고 정금자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비록 장례식장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이지만, 우리 금자 씨가 하늘나라에서 정말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낭독해 보겠습니다.” 





삶에 대하여 / 김은희 


어찌하여 이 땅에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묻는 것은 

네가 어찌하여 하늘이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 어미와 아비의 사랑으로 그리 된 것을 

결과를 품고 있는 이유를 백 날 천 날 물어봤자 수용이 없다 

대신 어떤 사랑을 했느냐고 물어라 

그리고 오늘 하늘엔 어떤 그림이 그려졌느냐 물어라 

사랑의 결과로 내 생이 시작하였고

하늘에 드리워진 먹구름으로 비가 내렸으니 

이유를 묻기 전에 결과를 보아라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결과

사랑의 결과 

다툼의 결과 

애씀의 결과 

질투의 결과 

바지런함의 결과 

게으름의 결과 


삶의 이유에 대하여 알고 싶거든 

부디 잘 살아라 

네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비로소 알게 될 테니 



김 작가의 묵직한 시를 듣고 있던 사람들 모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 같았다. 긴 세월을 산 사람도, 짧은 세월을 산 사람도 각자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진하게 느껴졌다. 지아 역시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삶의 이유를 찾기 전에 이 세상을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어졌다. 



“자 마지막으로, 정금자 시인께서 남긴 시 중에 한 편을 제가 낭독해 보겠습니다. 바로 “손녀”라는 시인데요. 이 시를 고른 이유는 다름 아닌 손뇨라는 말이 이탈리아 말로 꿈이라는 말이라는 게 너무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금자 씨는 알고 계셨나 봐요. 아마 금자 씨의 손녀 님이 알려주신 거겠죠? 

자, 그럼 낭독해 보겠습니다. 


이번엔 할머니께서 저를 생각하며 쓰신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손녀  


나에게는 손녀가 한 명 있습니다. 

내 딸의 얼굴을 닮았지만 딸과는 다른 눈빛을 가졌습니다.

내 사위의 성격을 닮았지만 사위와 다른 마음씨를 가졌습니다.

나는 손녀에게서 나의 모습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내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딸이 낳은 딸은 분명히 나의 작은 일부분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혈육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요.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 흐르는 그런 것이지요. 

나에게는 손뇨가 하나 있습니다. 

이탈리아 말로 손뇨는 꿈이라는 뜻이라는군요. 

나는 이탈리아말은 모르지만 꿈이 뭔지는 압니다. 

늙은 사람이 꿈을 꾸는 것이 우습겠지요 

허황된 꿈을 꾸느라 현실을 놓친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이 꾸는 꿈은 더 간절합니다

꿈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요

이루지 못하더라도 기쁨이 흐르는 그런 것이지요




출판기념회가 모두 끝난 후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동주와 경석은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진우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손님들에게 먹을 걸 내어주느라 분주했다. 지아는 벽 쪽에 서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때 아까부터 뒤에 서있던 간호사 한 명이 지아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드려다 본 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알아보겠어? 난 너 금방 알아봤는데.”

빙그레 웃으며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아였다. 

“어머, 수아?”

“응, 맞아. 용케 기억하네.”

“기억하지 그럼. 할머니랑 너 찾으러 다녔었는데. 근데, 여기 병원 간호사야? 베트남으로 간 줄 알았는데?”

“응. 그때 엄마랑 베트남 안 가고 여기 눌러앉았어. 사실 내가 베트남 말도 못 하고. 또 아빠도 그렇게 됐고….”

“아….” 

지아는 그제야 수아네 집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암튼,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때 할머니가 우리를 많이 도와주셨는데, 우리 때문에 나중에 할머니가 너무 힘들어하셨던 것 같아서.” 

“아니야. 너랑 너희 엄마가 더 힘들었겠지.” 

“암튼 이렇게 다시 만나니까 너무 반갑다.” 

“근데 너가 간호사가 되다니…. 정말 상상도 못 했어.”

“나도.” 

이렇게 말하며 웃는 수아의 모습이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어, 저기 진우도 있어.”

“아, 그래? 진우는 여전하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음식을 가져다주고 있는 진우를 바라보며 수아가 말했다. 

“그렇지?”

“응, 근데 저 오지랖도 아무한테나 부리는 게 아니더라고. 나한테는 맨날 잔소리만 했잖아. 하긴 잔소리도 뭐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거니까.”

수아의 말에 지아는 그동안 진우가 자기에게 부린 오지랖을 헤아려보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그렇게 조건 없이 도와줄 수 있을까 싶었다. 

“난 응급실에서 일해. 지난번에 할머니가 응급실로 오셨을 때 내가 있었어.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 그랬구나.”

“나중에 할머니 정신이 조금 돌아오셨다는 말 듣고 할머니 보러 갔었어. 거기서 널 봤지. 여전히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더라.” 

수아의 말에 지아가 싱긋 웃었다. 

“그땐 내가 정말 미안했어.”

“응?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그때, 나 때문에 할머니 시화전도 못하고 또 우리 아빠가….”

“아, 네 잘못도 아닌 걸 뭐.”

“그래도 널 만나면 꼭 사과하고 싶었어. 정말 미안해.”

“너 정말 멋진 어른이 됐구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아, 난 다시 가봐야 해. 근무시간 중에 잠깐 나왔거든.”

“어, 그래. 잘 지내고.”

“그래, 또 볼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 살아.” 

지아는 단정하게 간호사복을 입고 잰걸음으로 사라지는 수아를 보며 예전의 노랑머리 수아를 떠올렸다. 그리고 곁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외롭지 않다는 할머니의 시가 함께 떠올랐다. 할머니가 그런 사람이었다. 

이전 23화 23.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