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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05. 2019

인도 사는 아이들의 한글 공부

엄마표 한글 놀이

학원도, 학습지도 없는 곳에서 아이들에게 한글 공부를 시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방글라데시에서 거의 평생을 자랐고, 지금은 인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 두 아이들은 그럼에도 한글을 가장 좋아한다.

“아이들이 외국에서 큰 거 맞아요? 말을 왜 이렇게 잘해요?”

종종 이런 말들을 듣곤 한다. 글쎄.... 외국에 산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영어를 한글보다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두 아이를 보며 알았다.


가끔 외국에서 오래 산 아이들의 한국어 발음에 “R”이 섞여 있거나 “th”발음이 섞여있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그런 게 없다. 그 이유는,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기 때문이다.



가끔 아빠가 아이들과 놀아줄 때 영어를 사용하고, 엄마와 간단한 영어로 대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우리말로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영어나 프렌치보다 모국어인 한국어를 더 선호한다.


그렇다고 한국에 사는 아이들에 비해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정도이다. 더 열심히 가르쳐 주고 싶지만, 한글 문제집을 펼 때마다 아이들과 싸우고, 감정이 상하게 되어 그 뒤로는 아예 한글 문제집을 펼쳐보지도 않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 가끔 펼쳐서 겨우 한 장 풀어보는 수준이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영어와 프렌치를 공부하는 아이들, 하지만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한글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법.


학원도 없고 학습지도 없는 이곳에서 우리는 엄마표 한글 놀이를 하며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큰아이 5살 때 시작된 통 글자 한글 공부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아이는 통 글자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오히려 옆에 있던 동생이 통 글자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큰아이는 7살이 다 되어서 낱글자로 다시 한글 공부를 했다. 그때서야 아이는 글자의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힘들어했다.


지금 9살이 된 큰아이와 7살 둘째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책을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다. 하지만 받침은 아직 어려워하고, 글자의 방향을 헷갈려한다.


아이들과의 한글 놀이는 순간순간 하고 있다. 공부인지 놀이인지 알 수 없는 한글 공부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빙고게임이다.

9칸을 만들어 동물 이름, 식물이름, 과일 이름을 적어서 하는 빙고 게임은 놀이인 듯 한글 공부가 된다. 어려운 글자를 쓸 때는 엄마가 가르쳐 주기도 하고, 집에 있는 책을 참고하기도 하면서 9칸을 채운다. 이때, 엄마는 절대 이기면 안 된다.

빙고게임



숨은 그림 찾기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그림을  그려서 여기저기 숨은 그림을 직접 그리고 숨은 그림의 이름을 적어놓는다. 엄마는 그 이름들을 보고 아이의 그림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는다. 이때도 너무 잘 찾으면 안 된다. 가끔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는 말을 해줘야 한다.

숨은그림 찾기


요즘 둘째 아이와 하는 놀이는 문장 만들기이다. 두 단어를 엄마가 말하면 그 단어로 한 문장을 만드는

놀이이다. 그냥 말로 만들어도 되고, 종이에 쓰기도 하는데, 말로 해도 글로 써도 아이가 스스로 만든 문장에 무한 칭찬을 해준다.

문장 만들기


큰아이는 문장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마인드맵을 좋아한다. 주제를 가운데 놓고 그와 관련된 내용들을 가지처럼 연결해서 적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 또한 스스로 생각하고, 쓰고, 만들어보는 좋은 활동이기에 무한 칭찬을 해준다.

마인드 맵



이 중에서도 놓지 않고 하는 일은 당연히 책 읽어주기이다. 아이들이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자기 전 책 읽기는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동화책, 그림책, 과학책, 역사책 등, 아이들이 골라오는 책들을 골고루 읽어준다.


요즘 아이들과 엄마가 함께 빠져든 책이 있다. 바로 “신영식, 오진희의 고향 이야기” 짱뚱이 시리즈이다.

짱뚱이 씨리즈

1980년대를 배경으로 자연과 사람과 가족에 대한 만화이다. 아이들이 읽으면서 너무 재미있어해 엄마도 읽기 시작했는데, 80년에 전라도에서 태어난 엄마의 정서와 너무 비슷해 큰 공감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저 이야기로 보지만 나에게는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리움이었다.


스토리 만들기

큰아이는 요즘 자기만의 스토리를 짧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짱뚱이 만화를 보고 그려보는 듯하다. 그림일기도 하나 쓰지 않던 아이가 스스로 스토리를 만드니 대견할 따름이다.





한국의 아이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실력이다. 맞춤법도 다 틀리고, 방향도 틀리고 띄어쓰기도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짧은 문장 만드는 것, 빙고 게임을 하는 것, 자기만의 마인드 맵을 만드는 것, 그리고 스토리를 만들어 보는 것.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즐거워서 하는 놀이.


아이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즐거워하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자기만의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기를.....


“지안아, 소은아,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 글로 써보는 거야. 책으로 만들어 보는 거지. 그러려면 지금의 일을 잘 기억해둬야 해. 그러려면 기록을 해놔야겠지.....”

“다 까먹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매일매일 기록을 잘해두자고.”

“응, 알겠어.”


우리 아이들의 한글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 놀이이다. 언젠가는 이것만으로 부족한 시기가 오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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