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Apr 15. 2019

반 대표가 된 소심한 아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지안이는 CP(초등 1학년)이다. 한국 나이로는 9살이지만 생일이 12월생이라 같은 나이 아이들에 비해 조금 느리다. 7살이었을 때, 프렌치를 전혀 못했기 때문에 한 학년을 낮추어서 입학을 시켰다. 그래서 지금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2012년생들이다. 한국이었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외국학교에서는 한 살 많고, 적은 것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형이라고 유세 떨지도 않고, 한 살 어리다고 해서 동생처럼 굴지도 않는다. 아예 형, 동생, 오빠, 누나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난 오빠라는 말이 남편이나 사랑하는 사람한테 하는 말인 줄 알았어. 한국 드라마에 보면 다들 오빠라고 하던데?”


한국 드라마로 한국을 배운 친구들은 하나같이 오해를 한다. 그들에게는 그런 개념이 아예 없기 때문에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신기한가 보다. 그 친구에게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은 남자는 모두 오빠라고 부른다고 말해주었다.


 지안이 가 처음 프렌치를 배우기 시작한 나이가 7살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빠른 나이도 아니었다. 이미 한국어가 익숙한 아이에게 프렌치와 영어는 버겁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경험도 익숙해지는 법.

지안이도 처음보다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모두 프랑스 아이들이기에 그 아이들 사이에서 지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 아이들은 이미 전 학년부터 같은 반이었고, 친구 관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친구가 가장 필요한 나이에 지안이는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쉬는 시간에는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지안이는 어느 날부터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소심하기만 하던 아이가 용기를 내어 함께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 뒤로 함께 축구를 하는 친구들과 조금은 친해졌지만, 마음을 나누며 우정을 나누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프렌치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긴 하지만, 우리말처럼 쉽지가 않은 모양이다.


 지안 이반에서는 돌아가면서 반 대표를 뽑는다. 반 대표가 되면 선생님 대신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친구들을 잘 도와줘야 한다. 반대표가 하고 싶은 아이들이 손을 들고 있을 때, 지안이는 조용히 손을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체 나서기를 싫어하는 아이이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지안이를 지목했다. 그렇게 지안이는 반대표가 되었다. 2주 후면 다시 바뀌겠지만, 처음으로 맡아보는 중요한 자리에 지안이는 긴장을 했다.


 그 반에는 말썽꾸러기는 옥썽스라는 아이가 있다.. 옥성쓰는 위로 형이 2명이 있고, 여동생이 있다. 엄마, 아빠는 둘 다 너무 바빠 학교에 잘 오지 못한다. 옥성쓰는 평소에도 친구들을 자주 괴롭히고 수업시간에 자주 떠들어 선생님께 자주 혼나는 편이었다. 그런데 반대표가 된 지안이와 그런 옥성쓰가 부딪히기 시작했다. 떠들고 있는 옥성쓰에게 조용히 하라고 시키면 그 아이는 더 떠들어댔다. 심지어 지안이를 향해 나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옥성쓰와 자주 부딪히자 지안이는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되었다. 급기야 학교가 너무 힘들다며 울기 시작했다.

“반대표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래?”

“아니, 그건 괜찮아. 반대표 하는 것은 좋아. 다른 친구들은 다 말을 잘 들어주거든. 옥성 쓰만 말을 안 들어줘.”

“그럼, 뭐 때문에 힘들어?”

“공부도 힘들고, 옥성쓰가 자꾸 날 괴롭히는 것도 힘들어. 그냥 좀 쉬고 싶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친구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더운 날씨에 대한 스트레스.....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것이 없는 아이는 우울증이 온 듯했다.

아이를 위해 하루 결석을 시켰다. 공부도 친구도 동생도 없이 엄마와 단 둘이 시간을 보냈다.


주말 동안엄마와 신나게 논 후 조금은 안정되어 보였다. 선생님들도 지안이를 좀 더 주의해서 봐주기로 약속해 주었다. 선생님들도 다 알고 있었다. 지안이가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안이가 5살 때, 두 아이를 데리고 잠시 시골 친정집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때 친정아버지는 방 안에 커다란 부화기를 놔두셨다. 그리고 유정란을 구해 부화기에 넣어 놓고 온도와 습도를 알맞게 잘 맞추어 두셨다. 19일쯤 되자 한 알이 조금 움직였다. 20일이 되자 여기저기 금이 가 있는 알들이 보였다. 만화에서처럼 금방 알에서 톡 하고 나오지 못했다. 21일이 되자 드디어 병아리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단단한 알을 작은 부리로 조금씩 깨트리고 나오느라 병아리는 매우 지쳐 보였다. 물기에 촉촉이 젖은 날개는 축 늘어져 있었고, 다리에 힘도 없었다. 병아리는 알에서 나왔지만 금방 일어서지 못했다. 22일이 돼도 전혀 깨지지 않는 알도 있었고, 알을 깨긴 했지만, 나오지 못하고 알 안에서 숨을 거둔 병아리들도 있었다.


병아리들이 알을 깨고 있는 동안 우리는 그저 구경만 했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다. 병아리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건강하게 알에서 나온 병아리들은 하루 동안 축 처져 있더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병아리의 모습 우로 되어갔다. 몸에 있던 물기가 사라지자 보송보송한 솜털이 되었다. 삐약삐약 거리며 걸어 다녔다. 친정아버지는 그 병아리들에게 물과 모이를 주셨다. 아이들은 병아리를 쓰다듬고 만져보고, 자기 손에 올려보기도 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엄마미소가 절로 났다. 하지만 좀 더 커지자 더 이상 병아리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많이 자란 병아리들을 농장으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닭이 되었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 대표로 앞에서 예배를 인도해야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기독교 대학에는 목요일마다 채플이 있었고, 그 채플을 준비하고 담당하는 종교부장이 있었다. 소심하고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 내가 종교부장이 되어 매주 앞에 나가 찬양을 인도하고, 예배를 준비해야 했다. 그것은 큰 도전이었지만, 내성적인 성향으로 둘러싸인 알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기도 했다. 지안이 역시 그런 과정 을지 내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선천적인 성향, 내성적이고 예민하고, 부끄러워하는 껍질에 둘러싸여 낑낑대다가 조금씩 조금씩 조각을 내고 있으리라.


지안이는 자신만의 알을 깨고 있다. 이제 조금 금이 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알을 빨리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저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 지안이의 시간에, 지안이 스스로 그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그저 지지해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바로, 엄마의 역할이다.


“반대표 하기 힘들면 엄마가 선생님께 말해줄게.”

“아니야. 내가 할 수 있어. 정말 힘들면 엄마한테 다시 말할게.”



지안이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은 그저 엄마의 불안한 마음일 뿐.


내가 나만의 알을 깨고 나와 지금의 내 모습이 되었듯이 지안이도 언젠가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의 남자가 되겠지. 큰 어른 닭이 되어

꼬끼오~ 자기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기를 엄마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