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량 Apr 11. 2019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간 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분주한 아침,

소은이가 평소에 잘 신지 않는 양말을 들고 나왔다.

“엄마, 나 양말 신고 갈 거야.”

“갑자기 왜?”

“스포츠 시간에 신발 벗고 매트리스 위에서 멀리 미끄러지기 하는데 양말이 없으니까 잘 안돼. 양말 신으면 쭈욱 미끄러지거든.”

“그래. 알아서 해.”


더운 나라에 오래 산 아이들은 양말을 싫어한다. 양말을 신고 갔다가도 도중에 양말을 벗어 가방에 넣어 놓는다. 운동화를 신을 때라도 양말을 신으라고 하지만, 그때뿐이다. 어느새 양말 없이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소은이는 양말을 신고 샌들을 신었다. 패션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양새이다. 양말에 흰 샌들이라니.....

저 샌들도 최근에 사 준 신발인데 이미 닳고 닳아 앞부분의 가죽이 벗겨져있다. 흰색이었던 색깔도 어느새 갈색빛을 띤다. 여러 번 빨아주었는데도 몇 번 신으면 다시 갈색이 된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양말에 구멍이 난 거 같아.”

“정말? 어디?”

아이의 양말 위쪽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구멍 난 걸 신고 오면 어떡해? 다시 집에 갈 수도 없는데.”

“괜찮아. 구멍으로 바람이 솔솔 들어와서 시원한데.”

“괜찮겠어?”

“응. 괜찮아. 그냥 신고 갈래.”

결국 소은이는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서 신나게 놀고 왔다.


양말을 꿰매야지, 생각하고는 또 잊어버렸다. 그런데 며칠 뒤, 소은이는 또 그 구멍 난 양말을 들고 왔다.

“그거 구멍 났잖아. 다른 거 신어.”

“싫어. 이거 신고 갈래.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와서 발가락이 시원해.”

“아이들이 안 놀려?”

“응, 아무도 안 놀려. 다니엘은 신발에 구멍 났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다니엘의 엄마가 아이 신발을 사려고 신발가게를 알아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마땅한 운동화를 구하지 못했고, 다니엘은 그 구멍 난 운동화를 계속 신고 다닌다.





소은이의 신발은 대부분 누군가가 준 신발들이다. 한국의 사촌언니가 준 것도 있고, 다카에 있을 때

받은 신발도 몇 개 있다. 엄마가 사준 신발도 있긴 하지만 새 신발이라고 해서 그것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가끔은 다 찢어져가는 신발을 너무 좋아해 엄마의 반대에도 굳이 신고가는 경우도 있다.

지난 겨울,  한국 친구의 할머니가 잠시 아이들 학교에 방문했다가 소은이의 낡은 신발을 보시고는 한마디 하셨다.

“소은이는 다른 신발이 없나? 하나 사야 되겠네.”



지안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안이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은 작년 여름, 한국에 있는 사촌 형이 준 슬리퍼이다. 매일 그것만 신고 다니는 아이에게 다른 신발을 사줬지만 몇 번 신더니 불편하다며 다시 고무로 만든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그 신발의 바닥은 닳고 닳아 곧 구멍이 날 지경이다.


아이들이 이럴 때마다 엄마는 걱정을 한다.

‘다른 엄마들이 보고 욕하는 거 아니야?’

‘친구들이 놀리는 거 아니야?’

하지만 아이들은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다.


며칠 전, 학교에 오고 가는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두 아이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


어느 아이의 가방은 매우 낡아 있었다. 또 다른 아이의 신발은 닳고 닳아 있었다.

중학생 아이들 중에는 딱 달라붙는 타이즈를 바지처럼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고, 배꼽이 다 보이는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 아이의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나 있었지만 속옷을 입지 않고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학교 엄마들은 모두 화장을 하지 않는다. 모두 쌩얼로 다닌다. 립스틱을 바른 사람도 거의 없다.

학교에 갈 때마다 비비크림을 꼭 바르고 잡티가 보이지 않게 파운데이션을 꼼꼼히 바르는 나와는 뭔가 다르다. 그녀들은 얼굴의 주름, 잡티가 보이는 것에 개의치 않는 눈치이다. 뜨거운 인도의 햇빛 아래에서도 썬글라스만 쓰고 다닐 뿐, 아무도 모자를 쓰지 않는다. 며칠 전, 한국의 아줌마 모자를 쓰고 갔더니 동양 친구들이 웃으며 말했다.

“ 오~ 코리안 스타일.”


이 학교의 아이들과 엄마들은  남들의 시선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이고, 왠지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나 혼자이다.


브랜드 옷을 입은 아이도 없었다. 겨우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다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옷은 데카트론이라는 스포츠 할인매장에서 산 옷이다. 그곳에서 파는 스포츠 용품, 옷, 신발은 매우 저렴하다. 지안이는 거기서 2만 원에 산 축구복을 가장 좋아한다.


아마도, 인도라는 특성과 프랑스 학교라는 특성 때문인 것 같다.

뭄바이 프랑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거의 대부분 회사를 다닌다. 회사에서 학비를 보조해 준다. 대부분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과시하거나 특별히 잘난 척하는 사람이 없다.

(다른 국제학교에는 인도 아이들이 많은데,  대부분 부자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와는 다른 또 다른 문화가 형성된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현지인들이 주로 사는 아파트이다.  학교와 가깝고 바다와 가까워 좋기도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아파트의 외관은 보잘것없다. 다른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집과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외관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 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친구들에게 저 아파트가 우리 집이라고  당당하게 말을 한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엄마는 조금 망설여진다. 집도 작고, 보잘것없어서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게 조금 부끄럽다.


그런데 이제 좀 당당해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구멍 난 양말을 신어도, 구멍 난 운동화를 신고 다녀도, 더러운 가방을 메고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더라도 살고 있는 아파트, 주택에 따라 친구들 무리가 나누어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매우 당혹스럽다. 언제부터 집과 차, 보여지는 것으로  등급을 나누는 계급 사회가 된 것일까?

과연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가서 적응이나 할 수 있을까?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갈 수 있을까?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브랜드도 없는 할인 매장의 싸구려 축구복을 입고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까?  과연?



이곳에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외롭고, 덥고, 불편하다. 하지만 좋은 점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남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신경쓰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아이들은 이미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뼛속까지 한국 사람인 엄마는 오늘도 아이들에게서 삶을 배우고 있다.

이전 16화 난 네가 제일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