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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11. 2019

깍두기를 담다가 손가락을 썰었.... 아니 다쳤습니다.

그래도 엄마라서... 그래도 글이 쓰고 싶어서....

방학이 삼일 남았다. 길고 길었던 방학이 지나고 이제 끝이 보인다.

심심했지만 잘 지내준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실컷 놀게 해주고 싶어 호텔 수영장에 갔다.

호텔 수영장이지만 어른 천 루피(약 만 오천 원), 아이 오백 루피(약 7천 원)로 저렴하기까지 하다.

아침부터 서둘렀다. 일찍 가야 오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다.


넓은 하얏트호텔 수영장에 아무도 없다. 나와 친구와 아이들 뿐. 전세 낸 것처럼 놀았다. 물을 무서워하던 소은이도 이제 튜브를 끼고 어른 풀장에서 놀기 시작했다. 수영 못하는 엄마도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튜브를 끼고 놀았다.


점심으로 먹은 피자도, 몸이 젖어 시원한 기분에 마시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도 만족스러웠다.


4시간을 쉬지 않고 놀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으로 왔다.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유튜브를 보고, 엄마는 먹을거리를 사러 근처 마트에 갔다.

길거리 야채가게에서 리찌를 발견했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좋아했던 리찌. 한국 뷔페에서 먹는 그런 리찌와는 차원이 다르다. 1킬로를 샀다. 1킬로에 300루피(약 오천오백 원).

무와 파를 샀다. 무가 다른 마트보다 튼실하다. 파도 왠지 싱싱해 보인다.

집에 돌아와 무를 다듬고 파를 다듬었다. 무를 보기 좋게 썰어서 소금과 설탕에 절였다. 파에는 소금을 조금만 뿌렸다. 이제 깍두기 양념을 만들 차례.

며칠 전 마늘을 미리 빻아놓았다. 다행이다. 생강 대신  며칠 전 만들어 놓은 생강 청을 조금 넣었다. 이것도 괜찮은 듯.


이제 파를 송송 썰어야 한다.

소금 뿌려 놓은 파 중 한 줄기를 들고 송송 썬다. 주부 9년 차. 이제 파 정도는 그냥 송송 썬다.......

순간 아프다. 악 소리가 난다. 왼 손 검지 끝에선 이미 붉은 피가 떨어지고 있다. 그냥 봐도 상처가 깊다. 아프다. 아이들을 불렀다. 휴지로 돌돌 감고 지안이에게 약상자에서 흰 거즈를 찾아오라 시킨다. 지안이는 대일밴드를 들고 왔다. 다시 보낸다. 붕대 같이 생긴 하얀색 거즈를 가져오라고.

얼마나 다쳤나 보려고 살짝 손을 떼어 보았다.


이때다 싶었는지 붉은 피가 손가락에서 탈출한다. 바닥에 붉은 흔적을 남긴다. 다시 휴지를 잡고 꽉 누른다.

드디어 거즈를 찾았다. 휴지를 버리고 거즈로 손가락 끝을 감았다. 지혈을 해야 한다. 피가 통하지 않게

꾹 감았다. 그리고 손 끝까지 감았다. 아프다.

“엄마 피가 꼭 내 코피 같아.”

평소에 코피를 자주 흘려 붉은 피를 자주 봐 온 아이들은 놀라지도 않는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퇴근하려면 많이 남았지만, 빨리 와주기를 부탁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한다. 병원에 다녀오면 저녁이 될 터이다. 미리 먹여야 한다. 미리 만들어 놓은 치킨가스를 튀긴다. 밥과 치킨가스를 주고 난 짐을 챙긴다. 여권과 돈.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지?

큰 병원으로 가기로 한다. 구글로 미리 검색까지 해 놓았다. 남편한테 다시 전화한다. 남편이 오면 바로 갈 수 있게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남편은 출발도 못했다. 그냥 혼자 가기로 한다.


아이 둘을 데리고 택시를 탔다.

우버 기사는 젊은 청년이다. 자꾸 나에게 길을 물어본다. 나도 모르는데.

급기야 목적지를 못  찾고 있다. 구글맵이 알려준 병원 위치에 다 왔는데, 없다. 가끔 이런 일이 있다. 구글맵이 잘 못 되었거나, 업데이트가 안되었거나.

하필 오늘이 그 날이다. 그냥 택시에서 내렸다. 어디로 가야 하지?

바로 눈 앞에 다른 병원이 하나 보인다. 종합병원이다. 길만 건너면 된다. 퇴근시간 도로는 차가 많다. 횡단보도는 있지만 신호등이 없다. 달리고 있는 차를 멈춰 세울 강심장도 아니다. 그냥 기다린다. 두 아이 손을 잡고, 차가 멈추기를. 드디어 건넜다.


처음 가보는 병원에 가서 거즈로 칭칭 감은 손가락을 내밀었다. 경비가 당황했는지, 헛소리만 한다.

“응급실이 어디냐고~”

그제야 길을 알려준다.

응급실은 한가해 보인다. 난 바로 처치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처치실 문 앞에 서서 어슬렁 거리고 있다. 간호사들이 자꾸 아이들 얼굴을 만진다.

“쌍둥이야?”

쌍둥이냐고? 어떻게 저 두 아이가 쌍둥이로 보일 수 있지? 그냥 봐도 다르게 생겼는데?

“아니.”


의사가 왔다.

“어쩌다 이렇게 됐니?”

“저녁 준비하려고 야채 썰다가.”

여자 의사가 웃는다.

“상처 좀 볼까?”

그제야 나도 상처를 보았다.

손톱의 삼분의 일이 잘라졌다. 손가락 안쪽까지 잘라지긴 했지만 떨어져 나가진 않았다. 지혈하느라 거즈를 감아 두었더니 어느새 살이 붙었다. 피도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안 꼬매도 되겠어. 소독하고 드레싱 해줄게.”

내 눈엔 꼬매야 할 것 같은데 필요 없단다.

베타딘과 식염수로 소독을 하고(엄청 아프다), 테이핑을 하고, 거즈를 덧대고 다시 테이프를 붙이고 끝.

“약 먹을 필요 없을까?”

“응, 필요 없어.”

“물에 절대 젖게 하지 마.”


의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다. 난 약을 먹어야겠다. 인도의 약국에서는 원하는 약을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다. 난 항생제와 진통제를 샀다. 내 경험에 의지해서 처방을 내린다.


퇴근시간이라 우버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지나가는 로컬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왔다.

집에 남편이 와 있었다. 엄청 피곤해 보인다.


난 절여둔 무를 한 손으로 씻어 건진다. 마저 양념을 만든다. 그리고 깍두기를 만들고, 파김치도 만든다. 아이들이 또 배고프다고 한다. 계란 프라이를 해주었다.


그리고 아프지 않은 손가락으로 브런치 글을 쓰고 있다.


이무도 나에게 요리를 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깍두기도 안 하면 그만. 하지만 엄마이기에, 주부이기에 내 할 일을 한다. 아이들이 배고플까 봐 밥을 한다.


아무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난 작가도 아니고, 마감시간도 없다. 내 글을 궁금해할 사람도....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머리가 가렵다. 손가락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데, 머리를 어떻게 감아야 할까?  매우 난감하다.



(늦은 시간에 설거지를 해준 남편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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