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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19. 2019

에필로그

바이~ 뭄바이 프렌치 스쿨


한 달 전.

여름방학을 앞두고 교장선생님께서 걱정을 하셨다.

“방학 동안 지안, 소은이 프렌치 잊어버리면 어쩌죠?”

그렇잖아도 그게 가장 걱정이었다.

두 달 동안 프렌치를 사용하지 않으면 분명 새까맣게 잊어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아봐 줄 테니 걱정 말아요.”

교장 선생님은 내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을 알아봐 주겠노라 약속을 했다.


이제 내 두 아이는 더 이상  뭄바이 프랑스학교의 학생이 아니다. 두 달 후면 델리 프랑스학교의 학생이 된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신경 써주는 교장선생님은 분명,  “사랑”이다.


“델리 가서도 꼭 연락해요. 가끔 델리 학교에서 세미나가 있어요. 가면 연락할 테니 꼭 만나요.”


우린 더 이상 교장과 학부모의 관계가 아닌 듯하다.




교장선생님은 여기저기 알아보았으나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하긴, 뭄바이에서 프렌치 선생님을 찾기가 어디 쉬울까. 거의 포기를 했다.


집에서 프렌치 영상을 틀어주고, 교과서를 처음부터 복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잊어버린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메일이 하나 왔다.

“안녕하세요. Alliance francaise de bombay입니다. 뭄바이 프랑스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원래 아이들 반은 없지만, 교장선생님 요청에 의해 반을 만들려고 합니다.”


프렌치 어학원이었다.

뭄바이에는 성인을 위한 프렌치 어학원이 있고, 두 개의 센터가 운영 중이다. 이 어학원은 우리나라의 “한글학당” 또는 “한국어학원”과 비슷한 곳이다.

아이들 반은 없으나 내 두 아이를 위해 특별히 반을 개설해 주었다. 바로 교장선생님의 부탁으로...


지안, 소은이는 지금껏 학원도, 과외도 학습지도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사교육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한국에 가기 싫은 가장 큰 이유가 학원 다니기 싫어서라고 할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아이들을 배려할 수 없었다. 엄마가 가르쳐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이들을 배려해준 교장선생님의 노고를 무시할 수도 없는 법.


프렌치 어학원의 디렉터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시간, 날짜, 장소를 정했다.


두 아이와 택시를 타고 어학원을  찾아갔다.

항상 처음엔 걱정과 두려움이 존재한다.

아이들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아이들은 불안해했고, 엄마는 불안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다행히도 어학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정말 많은 인도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 사이에서 내 두 아이는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등록을 마치고, 처음 본 선생님이 와서 내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지안이는 긴장을 했는지  표정이 한층 굳어 있었다. 그래도 두 아이가 함께여서 마음이 놓인다.


아이들이 두 시간 동안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그림 그리고, 비행기를 접으며 노는 동안 난 노트북을 꺼내 글을 썼다.


2시간여의 수업이 끝나고 만난 두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펴 있었다.


“제 이름은 슈라다에요. 소은이가 그러는데, 엄마가 선생님 이름을 알라 오라고 했다던데요?”


수업 전, 소은이에게 미션을 주었었다. 선생님 이름을 알아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미션 성공이다.




이제 뭄바이 프랑스 학교와는 이별이다.

또 다른 학교, 델리 프랑스 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뭄바이 프랑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이들도, 나도 한층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덕분에 프랑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글을 계약하고,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 모든 경험들을 나눈 곳이 바로, 이곳 브런치라는

공간이다.

이제 뭄바이에서의 경험을 마무리 한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롭게 나아갈 아이들과 나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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