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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22. 2019

게임 때문에 아싸가 되었습니다.

게임, 허락해줘도 될까요?


요즘, 우리 집의 저녁 풍경이 조금 바뀌었다.

서로 엄마와 함께 자려고 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아빠와 자려고 한다.

“오늘은 내가 아빠랑 잘게. 내일은 오빠가 아빠랑 자.”

“아니야, 우리 두 번씩 아빠랑 자자.”

“아니야. 오늘은 내가 엄마랑 잘게.”

“......”

엄마, 아빠의 의견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


우리 부부는 안방에서 함께 자지 않는다. 안방에 있는 침대는.... 그냥 장식용인 듯.

처음엔 ,  아이들은 아이들 방에서, 우리 부부는 안방에서 잠을 잤지만, 큰 아이가 새벽에 깨서 자주 찾아오고, 잠을 못 자는 바람에....

지금은 아이들과 좁은 침대에서 함께 잔다. 책을 읽어주다 내가 가장 먼저 잠들어 버리곤 한다.


그럼 아빠는 어디에서 자냐고?

안방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거실에 이불을 펴고 자기도 하고, 아이들 침대 옆에 깔려있는 매트 위에 이불을 펴고 자기도 한다.

안방은 그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들리는 공간이라고나 할까. (안방 화장실을 주로 이용해요.)

가끔 밤늦게 부부가 만나기도 하고....(19금 아님)




어느 날 저녁. 지안이가 아빠를 애타게 기다렸다. 본사에서 출장자가 와 늦게 들어오던 날이었다.

10시가 넘어 들어온 아빠에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게임을 하나 깔았는데, 아빠랑 하고 싶어서.”

내 눈치를 살피던 아이는 든든한 아빠의 백을 믿고 그 시간에 태블릿을 열었다.

아빠는 그 게임에 사로잡혀버렸다.


그 게임은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농사를 지어 내다 팔고, 닭을 키워서 계란을 모으고, 팔고....

뭐 그런 류의 게임이다.

“나 원래 도시계획하고 싶었어.”

그 꿈을 게임 속에서 열심히 이루고 있는 남편.


게임을 깔지 말아라, 컴퓨터 그만 해라~ 잔소리하는 엄마와 다르게 아빠는 직접 게임을 하고, 아이들과 게임을 즐기고 있으니, 당연히 아이들은 저녁마다 아빠를 기다리고, 아빠와 함께 자려고 한다.


사실, 남편의 게임으로 몇 번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푸는 남편, 집에 오면 게임만 하는 남편이 짜증 났던 나.


20대 초반, 카트라이더 열풍에도 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 흔한 스타 크레프트 게임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하긴, 고스톱도 하지 않으니... 게임은 나와는 아주 먼 영역이다.


아직 어린아이들과 게임을 하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의 걱정거리는 바로 “게임 중독” 일 것이다. 물론 주위에 게임폐인은 많이 봤지만, 게임 중독은 많이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중독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게임 폐인이 중독이려나?)



“아빠, 우체국 아빠가 지었어?”

“응, 아빠가 지었어.”

“아빠, 옥수수는 팔지 마. 나중에 소 먹이 줘야 해.”

“돈이 부족해서 햄버거 가게는 못 짓겠다.”

“그럼, 계란을 팔자.”

“아빠, 다 팔지 마.”

“괜찮아. 다시 돈 벌면 돼.”

“호텔 하나 지을까?”

“아니야, 여기에 피자 가게를 짓자.”

“우리 땅이 많아졌네.”


셋이 붙어 앉아서 게임을 하며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자니....

재벌인 줄.....


현실 세계에서는 땅도 하나 없고, 집도 하나 없다는 사실.


저들이 게임을 할 때 난 아싸가 된다.

저들의 대화에 낄 자리가 없다.

처음엔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지금은 조용히 핸드폰이나 노트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혼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처음엔 게임하는 게 너무 싫더니,

아이들이 아빠한테 붙어 있는 그 시간 동안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니, 의외로 괜찮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아빠가 없으면 혼자 게임을 하지 않고, 아빠도 정해진 시간 까지만 게임을 한다.


이 정도는 눈 감아 줘도 되겠지???



늦은 밤, 에어컨의 리모컨을 찾아 거실로 나갔다.

작은 불빛이 보인다.

남편 혼자 조용히 앉아 계란을 팔고, 건물을 짓고 있다.

내 인기척을 느끼고는 흠칫 놀랜다.

리모컨을 찾아들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자기야,

나중에 내 집 좀 직접 지어주겠니??

전원주택으로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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