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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0. 2019

배려 깊은 사랑이란?

나도 배려하며 육아 하고 싶어, 좋은 엄마이고 싶어.

육아는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안이가 14개월이 될 때 즈음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매달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받지만, 치타공에서는 어림없는 소리다. 그저 임신 확인만 하고 그 뒤론 알아서 해야 했다. 둘째를 생각하고 있긴 있었지만, 이렇게 계획하자 마자 바로 임신이 될 줄은 몰랐다. 정말 축복받은 자궁임에 틀림없다.


입덧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정말 신기하게도 임신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입덧은 시작됐다. 입덧을 하는 기간 내내 난 집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동안 지안이는 뽀로로와 혼연일체가 되었다. 남편은 온종일 직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나 돌아왔다. 방글라데시의 휴일은 금요일이다. 그 날은 금요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가야 했다. 하지만 예배 끝나자 마자 컴퓨터를 켜고 다시 일을 해야 했다. 한국 본사는 금요일날 쉬지 않았고, 치타공 회사는 토요일, 일요일을 쉬지 않았다. 쉬는 날이 쉬는 날 같지 않은 날들이었다. 일주일 내내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날들이 많았다.


남편과 8개월 정도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싸우지 않고 오손도손 살겠다는 다짐은 사라진지 오래었다. 나는 내가 더 힘들다고 하고, 남편은 본인이 더 힘들다고 했다. 아마도 둘 다 힘들었겠지만,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두 부부 사이가 불안 하면 할 수록 아이를 더 잡았다. 아이의 시기에 당연히 나타나는 행동들에 대해 아이의 버릇을 잡겠다며 아이를 혼내곤 했다. 아이를 혼내면 혼낼수록 아이는 더 엄마에게 매달렸다. 날마다 반복되는 싸움이었다. 우리 셋 중에 누가 가장 힘든 지 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게 날마다 싸우며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교회 최집사님이 집에 놀러 오라며 차를 보내주었다. 난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었다. 최집사님에게는 딸이 둘 있다. 그리고 그 두 딸들은 하루 종일 책을 들고 사는 아이들이었다. 처음 그 집에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것은 아이들 그네였다.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그 집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놀이방은 책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그 두 딸들은 책이 장난감이고, 놀이였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책을 들고 와 읽어 달라고 하면 집사님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 이 책 읽어줄까?”하며 바로 읽어 주었다. 그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그네를 타다가도 책이 생각나면 다시 돌아와 책을 꺼내 들었다.  

“혹시 푸름이라고 알아? 난 힘들 때마다 푸름이 닷컴 들어가서 봐. 자기도 한번 들어가 봐”

나의 힘듦을 들켰는지 집사님은 나에게 푸름이를 소개해주었다.


푸름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재’로 불리운 아이이다.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푸름이의 부모님께서 “배려 깊은 사랑” 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여러가지 육아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푸름이 육아법에는 배려 육아, 책으로 하는 육아, 한글을 일찍 가르치는 육아 등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배려 깊은 육아”라는 말은 매우 생소한 말이었다. 육아를 어떻게 배려 깊게 하는 거지? 내 아이에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배려 깊게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집사님께서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모습이 바로 배려 깊은 육아였다.

분명 화가 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집사님은 얼굴을 붉히지 않고 조근조근 설명을 했다. 그리고 책을 읽어 달라는 아이들에게 절대 화를 내지도, 거절을 하지도 않았다. 내가 보기엔 천사 인 것만 같았다. 육아의 달인인가? 아니면 육아 전문가인가? 집사님의 행동, 말투,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껏 내가 해오던 그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집사님은 애가 둘인데도 이렇게 잘 돌보는데 난 하나인데도 왜 이렇게 힘들까요?”

“자기야, 하나도, 둘도 다 힘든 거야. 아이가 하나여도 힘들고, 둘이어도 힘들고, 셋도 힘들고, 다 그래.”

“집사님도 힘들어요?”

“당연히 힘들지.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내가 화내면 너무너무 무서워하거든. 몇 번 화 냈는데 애들이 정말 경기하듯이 무서워하는 거야. 그 뒤론 화를 안 내고 있어.”

“지안이는 좀 예민해 보이네. 자기도 좀 힘들겠다.”

그 말이 너무나도 위안이 되었다. “힘들겠다.” 그 말이 그렇게 큰 위로가 되는 말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집에 돌아와 푸름이 닷컴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수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해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 상담을 해주고, 푸름이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또는 한글을 떼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어떻게 배려하며 양육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푸름이 아빠인 최희수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고 있으면 교육은 걸림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갑니다. 부모가 아이의 눈빛을 읽으면서 아이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고 사랑과 배려로 키운다면, 아이는 남을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을 가진 행복한 영재로 성장할 거라고 굳게 확신합니다.”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고, 인정해주고, 아이의 눈빛과 그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배려 육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참 쉬운 듯 보이지만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머리로는 알겠지만 행동은 안되는 것,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 감정이 앞서서 이미 잘못을 저질러 놓고 나중에서야,

‘아, 내가 왜 그랬을까? 배려했어야 했는데………’ 라고 후회하는 모습들…

오히려 배려 육아를 알고 난 후 내 자신이 더 미워지기 시작했다.

‘남들은 다 저렇게 자기 아이를 잘 키우는데, 나는 애 하나를 키우면서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인지, 환경 탓도 한 두 번이지……. 난 정말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

날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는 이번에는 남들과 비교까지 하게 되었다. 푸름이 닷컴의 훌륭한 엄마들의 모습은 나에게 자극이 되기는 커녕, 넘볼 수 없는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첫째 아이 지안이는 엄마 이외의 모든 사람을 거부했다. 8개월 동안 떨어져 지내서였는지 아빠와도 애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돌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물어보는 말에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두 돌이 넘도록 아이의 낯가림이 여전히 심해 어디를 가나 매우 조심스러웠다. 엄마가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큰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보며 한마디씩 덧붙였다.

“엄마가 맨날 끼고 살아서 그래.”

“어린이집에 일찍 안보내서 그래. 저렇게 사회성이 없어서야…….”

“다른 집 애들은 안 그러던데 젠 왜 저래? 너무 유난스럽네.”

“엄마와 애착이 안 좋은 거 아니야?”

“난 절대 지안이 같은 애 못 키우겠다. 너나 되니까 키우지…….”

“방글라데시에 살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런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내리 꽂혔다.

내가 아이를 낯선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하루 종일 집에서만 지내게 했다. 그렇다고 아이를 살뜰하게 배려하며 키우지도 못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었다.

자책과 비교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때 알게 된 푸름이 육아법은 어떻게 해서든 내가 배워내야 하는 숙제 같았다. 힘든 내 삶의 고리를 끊어 줄 가위처럼 느껴졌다. 내가 내 부모님으로부터 배려 받아본 기억이 없기에 내 아이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육아를 엿보며 부러워하고 내 자신을 탓 할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그리고 내 아이를 위해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할 학습지침서 같았다.

‘그래, 남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게 뭐야? 내가 내 아이를 위해서 하는 건데. 그래 한번 해보자.’

해외에 있어서 책을 살 수는 없었지만, 꾸준히 사이트에 들어가 푸름이 육아법을 공부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특별한 개념을 발견했다. 바로 ‘내면아이’였다.

내 안의 내면 아이는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멈추어 있었다. 어린시절의 상처로 인해 내적 불행이 자리잡게 되었고, 그 내적 불행을 그대로 안고 있는 내면아이는 나와 아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와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내 안의 내면아이, 그리고 내적 불행…….

교회를 다니면서 이미 내적치유가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결혼하기 전의 일이었다. 남편도 아이도 없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이미 치유가 됐다고 생각했던 내 안의 내면아이가 불쑥불쑥 다시 살아나곤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아이가 아니었다. 예민한 내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다. 외로운 환경 때문에 이렇게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내 안의 여전히 상처 가득한 내면아이 때문이었다. 내 안의 내적 불행을 끄집어내 마주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내 안에는 상처로 가득한 아이가 여전히 울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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