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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0. 2019

나를 닮은 아이

상처를 제대로 치료해야 해.

지안이의 눈빛이 불안함으로 흔들릴 때,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지안이의 그네처럼 흔들리는 눈동자는 바로 나의 초점을 잃은 눈과 같았다. 아이의 안절부절한 표정은 아빠에게 혼날 까봐 5초단위로 눈치를 보던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볼 때 마다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잊고 살았던 내 모습이 문득 문득 아이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럴 때면 아이를 더 막대하곤 했다

. 더 큰 문제는 아이가 울고 떼를 부리고 하염없이 고함을 지르며 엄마를 부르면 아이를 더 심하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난 엄마에게 한번도 떼를 부려 보지도 못했는데, 엄마, 아빠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순종하며 살았는데 넌 왜 그러냐며 따졌다. 나와 닮은 모습을 봐도, 다른 모습을 봐도 아이를 용납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치유가 다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그건 치유된 것이 아니라 찢어져서 피가 흐르는 상처에 반창고 하나를 대충 붙여 두고, 치료가 다 됐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진짜 치료는 피가 멈추도록 꽉 눌러 지혈을 시키고, 상처 주위를 깨끗하게 소독도 하고, 적절한 연고도 발라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밴드나 거즈를 붙여서 치료를 완료한다. 그래야 상처가 잘 아물고 덧나지 않는다.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않은 상처는 결국 세균이 들어가 감염이 되어 진물이 난다. 상처 부위가 잘 치유되지 않아 통증이 계속될 수도 있다.

상처 부위에 딱지가 앉고 그 속에서 새 살이 나오면서 그 딱지는 떨어진다. 이제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니다. 단지 다친 흉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상처 부위를 꽉 눌러 지혈을 시켜주고, 소독을 해주고, 약을 발라줄 사람이 없다면 나 스스로 해야 했다. 스스로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했다.

'저 아이는 내가 아니야. 저 아이는 그저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 할 뿐이야. 그걸 표현할 방법을 모를 뿐이야. 그걸 가르쳐 주는 것이 내 일인 거야.'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외로운 내면아이를 만나는 여행을 했다. 그제서야 아이와 나를 다른 인격체로 분리해 생각 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참 많은 아이들이 나온다. 그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에는 항상 잘못된 엄마의 행동과 말이 있었다. 시청자의 눈으로 볼 때, 아이한테 어떻게 저렇게 하지? 라는 생각을 하며 보게 된다. 그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제3자의 눈으로 프로그램을 보기 때문이다. 정작 내가 당사자일 때는 그 문제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걸 깨달은 후부터 힘들 때 마다 제3자의 눈으로 상황을 보는 연습을 했다. 아이가 말도 안되는 일로 짜증을 부려 화가 날 때면, 나와 내 아이가 텔레비전 속에 있고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따라다닌다고 상상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내가 시청자가 되어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고 상상을 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머리로 생각 하기도 전에 손이 먼저 나가 이미 아이의 등에선 “퍽”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일이 있다. 지안이가 어린 동생에게 하는 행동과 말을 보니, 너무 익숙한 모습이었다. 인정 사정없이 동생의 등을 퍽~ 때리는 모습, 이제 앉기 시작한 동생을 밀어서 둘째가 대리석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모습, 내가 했던 그 행동들이 고스란히 지안이에게 옮겨 가 있었다. 지안이는 거울 같았다. 특히 내가 했던 나쁜 말투, 나쁜 행동, 나쁜 모습들이 고스란히 지안이를 통해 다시 나에게 되돌아왔다.

지안이는 언젠가부터 차만 타면 멀미를 했다. 조금만 차를 타도 멀미를 해 항상 비닐봉투를 챙겨야 했다. 아이의 멀미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나도 멀미가 너무 심해 버스 타는 것이 두려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동생을 데리고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에 가던 길, 올라오는 멀미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 결국 버스 바닥에 구토를 하고 말았다. 너무나도 창피했던 그 기억이 지안이가 차멀미 때문에 힘들어 할 때 마다 떠올랐다. 지안이는 내 모든 연약한 모습들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점점 더 날 닮아갔다.

‘과연 이 아이가 변할 수 있을까? 내 성격이 변했던 것처럼 지안이도 변할 수 있을까? 노력하면 아이도 좋아 질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확신을 했다가도 모래성처럼 그 확신이 무너지곤 했다. 어느 날은 아이의 예민함과 짜증을 잘 받아 주고 참아 주다가도 내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다시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도, 지안이도 변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떨어져 바위에 구멍을 내 듯, 파도가 쳐 큰 바위가 깎이고 깍이 듯, 우리는 그렇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다듬어 지고 있었다.


https://unsplash.com/@mischievous_pengu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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