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예민한 아이 키우기
지난주에 학교에서 메일이 하나 왔어요. 내년 1월에 학교에서 3박 4일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요. 이제 2학년인 아이들을 데리고 3시간 거리의 지방으로 여행을 간대요. 갈 수 있는 아이와 못 가는 아이 , 못 간다면 그 사유를 적어달라더군요.
음..... 고민이 되었습니다.....
제 첫째 아이, 지안이는 많이 예민한 아이입니다. 신생아 때부터 많이 울었어요. 100일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요, 울음소리는 더 크고 길어졌어요.
자는 걸 너무 싫어했어요. 그래서 악을 쓰며 울었답니다. 그때는 내가 뭔가 잘못해서 아기가 운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그런 기질의 아기였었내요. 아기가 울면 왜 그렇게 죄책감이 들던지요......
3살 때부터 낮잠을 거부했어요. 자기 싫어서 아득바득 버티며 짜증을 냈죠. 이해가 안 됐어요. 난 자는 게 제일 좋은데 말이죠.
아이를 재우려고 날마다 싸웠어요. 아이는 울고 짜증내고 안 자려하고, 난 재우려 하고.... 그러다 결국 책을 읽어주며 재우기 시작했고, 그 습관이 굳어져서 9살인 지금까지 책을 읽어줘야 잠을 잡니다....
잠자리 분리는 꿈도 꾸지 못해요. 몇 번 시도했다가, 잠을 못 자고 무서워해서 그냥 포기했어요. 지금도 자다가 자주 깹니다. 특히 엄마나 아빠가 옆에 없으면 갑자기 깨서 돌아다녀요. 휴..... 귀는 또 어찌나 밝은지, 작은 소리도 잘 들어요. 그래서 겁도 많죠.
냄새도 기가 막히게 잘 맡아요. 조금만 나쁜 냄새가 나도 “우웩” 거려요.....
차만 타면 멀미를 해요. 학교까지 20분 정도 걸리는데, 차만 타면 속이 안 좋다며 드러눕습니다.
성격은 또 얼마나 무뚝뚝 한지, 모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고요, 누가 뭘 물어봐도 대답을 잘 안 해요.
이런 제 아이가 많이 답답했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 버릇없이 보이는 것은 아닌지, 약해 보이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쓰였어요. 엄마가 너무 끼고 살아서 아이가 엄마만 찾고, 어릴 때 어린이집에 안 다녀서 사회성이 없다고 하는 말들이 가끔
상처가 되기도 했어요.
예민한 아이를 해외에 데리고 가서 키운 것이 다 내 잘못 같았어요.
하지만 한 가지, 믿고 싶었어요.
아이가 예민하지만, 마음이 많이 약하지만, 엄마가 함께 해주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었어요.
9살 지안이는 학교에서 모범생이에요.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냅니다. 축구하면서 남자 친구들과도 놀고, 술래잡기하면서 여자 친구들과도 잘 놀아요. 최근에 로레또라는 여자 친구가 지안이를 좋아한다고 했대요. 그 말을 들은 지안이는 좋았나 봐요. 지금껏 혼자 짝사랑만 했지,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없었거든요. 무뚝뚝 하지만 정이 많아서 한번 친해지면 깊게 사귀는 편이에요.
아이가 많이 예민해서 과외나 학원을 보내지 않고 있어요. 스트레스를 쉽게 받거든요. 7살 때 강박증이 심하게 와서 몇 달 힘든 뒤로는 공부를 열심히 시킬 마음을 비웠어요. 공부보다 내 아이가 건강한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아이는 귀가 예민해요. 그래서 소리를 잘 들어요. 한번 들은 노래를 잘 기억하는 편이에요.
아이반에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아이가 꽤 있어요. 하루는 물어보더군요.
“엄마, 스페인어에는 ‘~리또’, ‘ 라또’로 끝나는 말이 많아. 친구들이 말할 때도 그렇고, 스페인 노래도 그래.”
한 번씩 스페인 노래를 들어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가 좀 신기해요. 힘들기만 했던 아이의 성향이 알고 보면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나요?
많이 힘들 거예요.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 자라더군요. 뭘 더 해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예민한 아이들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알아요.
얼마 전에 지안이가 그러더군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대요. 그런데 아이는 피아노도 칠 줄 몰라요. 배우지도 않아요. 그래서 말했어요. 음악을 하려면 알아야 한다고요. 네가 꼭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어요. 아직까지는 말이 없는 걸 보니, 간절하진 않나 봐요.
그래서 남편은 걱정을 해요. 아이가 예민하고 감성적이어서 혹시나 예술 쪽으로 길을 가려할까 봐요. 음..... 그 길이 나쁜 건 아니지만, 쉽진 않겠죠?
선생님의 메일을 받고 한참 생각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모두 갈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지안이에게 물어보았어요. 가기 싫대요. 소풍은 좋지만, 자고 오는 게 싫대요.
그래서 선생님께 메일을 보냈어요. 사실대로 말했죠. 멀미를 하고, 밤에 엄마가 없으면 잠을 못 자고, 자다가도 자꾸 깬다고요. 그래서 못 보내겠다고요.
9살이면 독립심도 키워줘야 하고, 스스로 뭐든지 해야 하고, 잠도 스스로 자고, 책도 스스로 읽어야 한다는, 매우 일반적인 생각들이 있죠.
그렇게 모범적으로 자라는 아이들도 있어요. 하지만 제 아이는 아닙니다. 많이 기다려 줘야 해요. 스스로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해요. 그리고 믿어줘야 해요.
한참 아이가 많이 울고 예민하게 반응할 때 가장 힘이 되었던 말이 있어요.
"괜찮아. 이런 아이들이 크면 오히려 감성이 풍부한 아이가 돼. 엄마가 믿어주면 괜찮아. 조금 예민해도 괜찮아."
혹시 저처럼 예민한 아이를 키우시나요?
조금 예민해도 괜찮아요. 그 예민함 덕분에 감성이 풍부한 아이가 되었어요.
아이가 좀 울어도 괜찮아요. 지금은 울라고 해도 눈물을 꾹 참는 아이가 되었어요.
사회성이 없어 보여도 괜찮아요. 지금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꽤 좋아요.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달라도 괜찮아요. 우리 아이는 특별한 아이니 까요.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세상을 본다고 하죠.
엄마 아빠가 괜찮다고 받아주면, 아이도 세상 사는 게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19살 지안이가, 29살 지안이가, 그리고 39살 지안이가 즐겁세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전 오늘도 말합니다.
좀 못해도 괜찮아.
넌 내 아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