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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출장을 가면 솔직히...

18. 아빠는 부재중.

by 선량

남편은 출장을 자주 갑니다.

뭄바이에 살 때는 델리로 출장을 갔었어요. 지금은 델리에 사는데 뭄바이로 출장을 갑니다.

남편은 집을 떠나며 신신당부를 해요. 문단속 잘하라고요. 베란다 문 꼭 잠가라. 현관문은 이중으로 잠가라......


사실, 남편이 출장을 가서 며칠 집에 없으면 몸이 편해요. 일단,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니까 아침 시간이 덜 바빠요.

아침부터 도시락 싸려면 몸도 마음도 분주합니다. 그렇게 바쁘게 도시락을 준비했는데,

“오늘 도시락 안 싸도 돼.”

“.......”

이런 날이 종종 있었어요. 뒤통수 한 대 퍽~ 때려주는 대신, 머리를 잡고 흔들었습니다.

“미리미리 말하지 못해? 아침에 바쁘게 움직이는 거 못 봤어?”

왜 모를까요? 진짜 안 보이는 걸까요???


남편이 출장을 가면, 와이셔츠를 안 다려도 됩니다. 셔츠는 미리미리 다려놓는 편인데요, 이런 날은 그냥 쌓아두고 나중에 한꺼번에 다려도 되죠.


남편이 출장을 가면, 저녁을 대충 먹어도 돼요. 아이들은 미역국에 밥만 줘도 잘 먹어요. 반찬 한 가지에도 밥을 먹어요. 많이 해주면 오히려 남기죠.

남편 저녁은 그래도 신경을 좀 쓰는 편이에요. 국도 끓이고(없으면 라면이라도....), 반찬도 한 가지 더 하고요. 그런데 남편이 없으면 대충 먹어도 되니까 편해요. 설거지도 확 줄어요.


남편이 출장을 가면, 아이들이 일찍 잠들어요. 아빠가 있으면 그렇게 놀고 싶어 해요. 아빠가 레슬링이라도 해주는 날이면, 9시가 훌쩍 넘어서도 안 자려고 해요. 일찍 자라는 엄마를 가장 싫어하죠. 며칠 전에는 서로 아빠랑 자겠다고 싸우는 거예요. 엄마 없으면 못 자던 녀석들이 아빠랑 자겠다고 싸우다니...... 결국 큰아이가 이겨서 아들과 아빠, 딸과 엄마로 찢어져서 잤어요.

남편이 없으면 이런 일이 없으니 일찍 잡니다. 누워서 책 읽어주면 스르르 자거든요. 9시 즈음 아이들이 잠들면, 이제부터 내 세상이에요.ㅎㅎㅎ



하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출장 가는 것을 싫어해요. 아빠 없이 우리 셋이 있어야 하는 게 싫대요.

어제는 갑자기 비가 내렸는데, 천둥 번개까지 치는 거예요. 아빠도 없는데 비는 요란하게 내리고, 천둥 번개는 치고.... 아이들은 무섭다며 난리였어요. 바람에 문이 덜컹 거리는 소리,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아빠를 찾는 거죠.

“아빠 보고 싶어~”

급기야 딸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훌쩍입니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아이들은 잠들었어요. 아이들이 자면 일어나려 했는데, 저도 그만 잠들어 버렸어요. 아까운 내 밤 시간....


아빠가 출장을 가면, 아이들은 이상하게 아빠 몫을 더 챙겨요. 어제는 옥수수를 삶았어요. 옥수수를 맛있게 먹던 아들이, 다 먹지 말고 남겨놓으래요. 아빠 오면 주겠다고요. 아빠 오려면 아직 사일이나 남았는데 말이죠. 마트에서 사 온 하트 모양 초콜릿을 아껴먹으라고 잔소리를 해요. 아빠 오면 줘야 한다고요. 그거 내 돈으로 산 건데....... 아빠 있을 때나 좀 챙겨주지.......


아빠가 출장을 가면, 애들은 유난히 더 아빠를 찾아요. 보고 싶다고 징징대고, 카톡을 해달라고 하고, 영상 통화를 해달라고 해요. 아빠가 한 집에 있을 때는 쳐다도 안 보면서 말이죠.





남편이 출장을 가면, 전 몸이 편해요.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요. 아이들은 불안해해요. 아빠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 아빠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 아이들은 느끼나 봅니다.

남편은 알까요? 자신이 우리 가정에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아빠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는 그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학대 아니에요. 마사지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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