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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23. 2019

총각김치를 담다가 글쓰기를 생각했습니다.

경험이 쌓이면 노하우가 생길까요?


델리에 온 후, 제 인간관계는 매우 심플해졌어요.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긴 하지만, 엄청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진 않습니다.

블로그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와 가끔 만나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지만, 서로 부담 주는 사이는 또 아니에요. 몇 주 동안 연락을 하지 않을 때도 있고 또 그러다 갑자기 연락해서 소풍을 가는 사이예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한국 사람이 없기 때문에 더욱 인간관계가 심플한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 아이들이 프랑스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같은 반 엄마들과 친해져야 할 것 같고, 아이들끼리 놀 수 있는 플레이 데이트( playdate: 서로의 집에서 함께 노는 것)를 꼭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먼저 연락하고, 집에 초대도 하고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고 있어요.

이제 엄마가 개입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잘 놀거든요. 전 그냥 먼발치에 서서 보고만 있습니다.

아이들이 친구들 초대해 달라고 달달 볶으면 그제야 상대 아이의 엄마 연락처를 알아보고, 함께 놀자 하는 정도예요.

그러니, 학교 학부모 사이에서도 한인 사회에서도 전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한 사람입니다.



학교엔 동양 사람이 거의 없어요. 제 아이들과 중학생 남자아이, 이렇게 세 명이 한국 아이고요, 일본 친구가 세 명 있는데 모두 한 형제예요.

그 아이들의 엄마 아야꼬와 오며 가며 인사만 하다가

드디어 시간을 잡고 커피를 한잔 마셨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가 좋진 않지만, 이렇게 동양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람이 금방 친구가 되고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쏘냐, 나랑 같이 INA 마켓 갈래? 거기 가면 야채도 많고 생선도 있어.”


그곳은 델리에서 유명한 재래시장인데요, 혼자 한번 갔다가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죠.

올타꾸나 하고 어제 아야꼬를 따라 재래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아야꼬를 따라 간 그 시장의 어느 야채가게게서 부추와 알타리 무를 팔고 있었어요. 그때까지도 총각김치를 담글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아주 실한 무를 보자 자동적으로 무를 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옆에는 생선 파는 가게가 있었어요. 세상에..... 낙지와 오징어가 있는 거예요. 여태껏 인도에는 먹을거리가 없다며 툴툴거렸는데, 여기에 다 있었네요..

인간관계가 워낙 좁다 보니, 이것도 모르고 그러려니 하고 살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천만다행이네요. 낙지볶음 해먹을 생각에 2킬로나 사버렸습니다. 부추와 오징어 넣어서 부침개 해먹을 생각에 오징어도 사버렸어요.

먹을거리를 잔뜩 사들고 돌아오니 왜 그렇게 기분이 좋던지요.


회사일 할 때, 자료가 부족하거나 정보가 부족하면 의욕이 없고 하기 싫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식재료가 부족하니까 요리하는 게 재미도 없고, 의욕도 없었어요. 겨우겨우 한 끼 준비해서 가족들 먹이는 게 다였죠.

그런데 식재료가 풍성해지니 의욕이 확 생겨났습니다. 어차피 손질하고 요리하고 정리하려면 일이 어마어마 많은데도 말이죠....


집에 와서 무를 다듬어 소금과 설탕에 절였어요.

마늘을 다듬고, 밀가루 풀을 만들고, 파가 없어 대신 양파와 부추를 준비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김치에 뭐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엄마한테 물어보고, 인터넷에 찾아보고 했을 텐데, 지금은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것을 가지고 만듭니다.

경험이 쌓이면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는 거겠죠.



글쓰기도 그럴까요?

서툴게 시작한 브런치 글이 300개가 넘었어요.

다음 달이면 브런치 작가가 된 지 딱 1년이 됩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총각김치를 담그는 일처럼 뚝딱 되지가 않네요.

여전히 서툴고,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짝사랑하는 기분입니다.


한국에서 사 온 책들을 읽고 있어요. 그중에 글쓰기 관련 책은 “강원국의 글쓰기”인데요, 읽다 보니 내 문제가 무엇인지 훤히 알겠더라고요.

“질문이 없는 것, 호기심이 없는 것.”

전 아이 때부터 호기심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질문도 없었어요. 그냥 그러려니, 저 사람 많은 어려움이 있겠거니, 다 사정이 있겠거니.... 했죠.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도 있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이잖아요. 전 그 말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글쓰기에는 그런 게 별로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사회에 질문하고, 의문점을 가지고 파고들고, 모든 자연스러운 현상에 딴지를 걸어봐야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총각김치를 처음 담글 때, 엄마에게 물어보고, 큰언니에게 물어보고, 네이버, 다음에 물어보고 그것도 모자라 만개의 레시피, 백종원에게 물어보았던 것처럼요.

글쓰기도 그렇게 읽고, 쓰고, 물어보고 하다 보면, 언젠간 노하우가 생길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질문을 하나 던져볼까 해요.


총각김치는 어쩌다 총각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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