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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24. 2019

발 뒤꿈치

거칠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방법이란?


예전에 전 이렇게 말했었어요.

“내 몸에서 가장 자신 있는 것은 발이야.”

여기서 예전이라 함은 결혼 전을 말합니다. 결혼 전아가씨일때, 구두를 많이 신지 않았어요. 단화나 운동화를 즐겨 신었지요. 어쩌다 한 번씩 구두를 신긴 했지만, 발이 아프고 불편해 항상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기만 했답니다.

5cm의 구두를 신으면 그만큼 자존감도 올라간다고 하죠. 저도 그러고 싶었지만, 뒤꿈치가 까지면서까지 자존감을 올리고 싶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제 발은 유독 날씬하게 생겼습니다. 칼 발이라고 하죠. 235cm에 옆라인이 날씬해서 구두를 신으면 꽤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발가락 길이도 엄지부터 새끼까지  점점 작아집니다. 휘어진 발가락도 없고 발톱 무좀도 없어요. 손이나 얼굴과 다르게 고생 한번 안 해본 발처럼 생겼죠.


그런데 방글라데시, 인도에 사는 동안 발이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 더웠기 때문이에요.

더운 나라에서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요, 땀이 엄청 찹니다. 그럼 또 냄새가 지독하게 나죠.

그래서 샌들을 주로 신고 다녔습니다. 앞과 뒤가 트인 신발을 신고 다니면서 양말은 서랍 속에 고이고이 간직해 두었죠.

그런데 7년 동안 샌들을 신고 다니는 동안, 제 발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발이 창피해졌어요. 그 이유는 바로 발 뒤꿈치 때문이었습니다.

발가락도 여전히 가지런하고, 발 옆모양도 여전히 날렵했지만 발 뒤꿈치만은 아니었어요.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버렸죠. 거칠거칠 해지고 심지어 갈라지기까지 했어요. 각질이 심하게 일어나고 심지어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발에 곰팡이~”


보이는 것만 신경 쓰며 살다 보니 보이지 않는 발 뒤꿈치는 엉망이 되어버렸죠.


한 번씩 거칠거칠한 돌멩이로 밀어도 보고, 바셀린을 잔뜩 바르고 양말을 신고 자보기도 했지만, 좋아지지 않았어요.

자다가 내 발이 남편 발에 닿으면 남편은  까끄럽다 했지요. 그 곱던 내 발이 천덕꾸러기가 돼버렸습니다.


약 한 달 전부터 운동화를 다시 꺼내 신었어요. 양말도 신었고요. 다행히도 날씨가 많이 싸늘해져서 발에 땀이 나진 않습니다.

밤마다 코코넛 오일을 듬뿍 바르고 양말을 신고 자고 있습니다. 거칠어진 내 발을 곱게 곱게 만져주고 있어요.


어..... 그런데 오늘 보니까, 발 뒤꿈치가 부들부들 해졌어요. 각질 제거도 하지 않았는데 각질이 만져 지지도 않네요. 곰팡이 같던 내 발 뒤꿈치가 깨끗해졌어요. 그렇게 노력해도 사라지지 않던 각질이 그저 감싸주었더니 저질로 사라졌습니다. 정말 신기했어요.



며칠 전, 뭄바이에 살고 있는 친한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요. 상처를 많이 입었더라고요. 30대 중반의 그녀는 사람을 잘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었어요. 친해지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는 사람이죠. 그리고 사람들을 너무 신경 쓰며 살아요.

자기가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더군요. 심지어 딸아이 친구의 생일선물을 고르며, 너무 싼 거 사면 그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걱정하더라고요.


“ 왜 그 사람의 마음까지 자기가 신경 쓰고 그래. 그건 그 사람의 몫이고, 그 사람의 그릇인 거야. 자기가 신경 써야 하는 건 자기의 마음이야. 자기 마음이 중요한 거야.”

“ 아.... 그렇네요, 언니. 내가 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고 있죠?”


그녀와 대화하면서 30대 중반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하며 고민했어요. 그게  착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제 알겠어요. 그건 내 마음을 아껴주지 못하고 감싸주지 못했건 것이라는 걸요. 계속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만 신경 쓰고 살다 보면, 내 마음에도 거칠거칠한 각질이 생겨나고 말겠죠?

마음에 곰팡이가 피어나면 힘든 건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임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발 뒤꿈치에 생긴 각질도, 마음에 피어난 불편함도 칼로 도려내고 돌로 박박 문질러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레 크림을 발라주고 손으로 만져주고 감싸주면 저절로 사라집니다.

그러면 발은 다시 예뻐지고, 내 마음은 편해집니다.


마흔의 언니가 삼십 대의 동생에게 꼰대 같은 말을 한건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동생이 알았으면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거라고요. 

그 친구도 나이가 더 들면 저처럼 꼰대 같은 조언을, 누군가에게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커버사진은  발이 아닙니다. ]

unsplah_@ Rune Enst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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