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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08. 2019

글 쓰는 사람들은 모두 관종 이어야 할까?

관심 때론 무관심이 좋다.


‘말을 할까, 말까.....’

오늘도 수십 번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다.


첫사랑에게도, 짝사랑에게도 먼저 고백하지 못했던 젊은 날의 소심함과 낯부끄러움이 여지없이 되살아났다.

오늘은 말을 해야지......

아니야, 말해서 뭐해. 그냥 조용히 살자......


 


sns에서의 나와 실생활에서의 나는 꽤 다른 모습이다. 소극적이고 조용히 살고 싶은 내 모습도 나이고, sns에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는 내 모습도 나이긴 하지만, 그 간극이 워낙 크다 보니 이래도 되나 싶다.


“연말인데 안 바빠요?”

“집에서 뭐하며 지내요?”

사람들의 질문에, 내 대답은 항상 같다.

“그냥..... 있어요.’

“안 심심해요? 좀 돌아다니고 하지.”

“워낙 집에 있는 걸 좋아해서요.”

그리고 난 고민을 시작한다. 말을 해? 말어?


사실 집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예요. 다음 포털에도 여러 번 올랐고요, 구독자도 천명이 넘었어요. 1년 동안  글이 300편이 넘었죠. 인스타그램도 하고 있어요. 아이들 동영상과 사진도 올리고 있죠. 그리고   책이 나와요. 다음 주에 인쇄 들어간대요.  작가예요.’


하지만 오늘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냥’도 아닌, ‘그냥.....’

별이  다섯 개가 아닌 점 다섯 개는 내 마음을 너무 잘 표현해준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꺼내지 못하는 마음이랄까?




글을 쓰는 난 관종(관심종자)이다.


사람은 어쨌든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존재인 것이다. 글이란 평면적인 한 인간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힘이 있다.
[퇴근길 인문학-전진/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최옥정]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글로 해소하고 있다. 글 속의 나는 꽤나 입체적인 사람이 된다.


블로그에 인스타에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어떻게 독자들의  관심을 끌까? 고민하며 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안의 것들을 토해내는데 바빴다. 그것만으로도 심장이 뛰었고, 호흡은 멈추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오랜만에 사색이라는 것을 해보고 있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독자들에게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 .

보이지 않던 생각을 보이는 무언가로 창조하는 것. 

이것의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한 번씩 다음 포털에 뜨면  괜히 신나고, 구독자가 한 명 더 생기면 뿌듯하고, 글자 하나에도 책임감이 생기는 것이다. 조회수가 올라가면 입꼬리도 덩달아 올라간다.

당신도 그렇다면, 맞다. 당신도 나처럼 관심종자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면 상황을 상대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생생하게 그려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퇴근길 인문학-전진/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최옥정]


글을 쓰는 나는 꽤 적극적이다. 내 아이들과 남편을 까발리고, 내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고, 내 신체의 단점을 쓴다. 그렇지만 부끄럽지 않다. 오리려 내 글을 하나라도 더 읽어주기를 바라는 편이다.

출간을 앞두고 sns에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 한다. 해외에 있기에 직접 발로 뛸 수 없으니, sns에서 더욱 셀프 관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나는 투종(투명 관종)이다.


사실, 관종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궁금해 검색을 해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내가 모르는 다른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 끝에 그냥 나만의 신조어를 만들었다. 얼굴 없는 관종, 투명 관종.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기도 하다. 다들 본인들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쁘다. 더욱이 어딜 가나 말이 많은 한인사회에서 가십거리가 되고 싶지 않기도 했다.

뭄바이에 살 때, 지인의 집에서 새로 뭄바이로 오신 분을 만났다. 이야기하다 보니 프랑스 학교 이야기가 나왔고, 그분의 입에서 “쏘냐”라는 이름이 나왔다.

“아..... 그거 저예요.....”

“어머, 쏘냐 님이세요?”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듣는 나에 대한 말은 좀, 뭐랄까... 부끄럽기도 하고, 얼굴이 뜨겁기도 했다. 내 얼굴이 투명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도 내 책이 나온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교회 사모님께 조차 말하지 못했다.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려야지 했다가 그만두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아주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먼지처럼 살고 싶었다.



한동안 필명을 바꿔볼까 고민을 했다.

다른 작가님들의 필명이 좋아보아기도 했고, 쏘냐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글을 써보고 싶기도 했다. 고민하며 필명을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sns에서는 관종인 쏘냐가 사라지면 정체성도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노래방에서 남들이 노래할 때 잘 듣지 안 듯,
사람들은 당신의 글에 의외로 관심이 없다.
[ 강원국의 글쓰기]


사실, 그렇다.

내가 쏘냐로 커밍아웃을 해도 다들 내 글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책이 나온다고 해도 내 주위에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기에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곧, 말을 하려고 다짐했다.

글을 쓰고 있다고. 내 책이 나온다고.




그런데, 노래방에서 나처럼 탬버린 치며 노래를 잘 듣고 있는 이도 있을 텐데?

역시, 아직은 고백하기가 조금 두렵다. 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 조금만 더 이중생활을 해야겠다.



[커버 사진 _ unsplash@lapromet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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