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셀 게스트하우스의 비밀
설화는 그녀의 몸이 생각보다 왜소하다고 생각했다. 힐을 신고 있었기에 키가 커 보이긴 했지만, 설화보다는 작은 듯했다. 하지만 얇은 여름 원피스를 통해 드러나는 실루엣은 그녀의 신체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똑깍 거리는 구두 소리가 경쾌하게 다가왔다. 그녀의 가는 손가락이 허공을 향해 바람처럼 흔들리며 다가올 때, 설화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옆에 서 있는 강철에게 향해 있었지만, 깊은 골짜기의 버드나무 같은 그녀의 눈썹은 설화를 향해 있었다.
“헤이, 아이언. 언제 왔어?”
“내가 할 소리. 드디어 왔구나, 마야. 오랜만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지만, 하이톤의 경쾌한 소프라노 같았다. 서로의 몸에 감긴 팔을 풀며 활짝 웃을 때, 설화는 괜히 심술이 났다.
“아, 이쪽은 설화 씨야. 지금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어.”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마야라고 해요. 혹시 한국 사람?”
“아, 네. 맞아요. 반가워요.”
마야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설화를 쳐다보았다. 큰 호수 같은 그녀의 눈에 드리워진 눈썹이 흔들거렸다.
“피곤할 텐데, 자 들어갑시다. 나도 오늘따라 피곤하네. 좀 쉬어야겠어,”
강철은 마야와 설화의 등을 입구 쪽으로 떠밀며 말했다. 강철은 뭔가를 더 말하려 다 다시 입을 굳게 닫았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하지 않은 말을 더 하면 뜨거운 불길이 일어날 것 같았다. 마야는 1층으로, 강철과 설화는 2층으로 걸어 들어갔다.
설화는 침대에 가로누워 마야를 떠올렸다. 그녀의 커다란 눈과 버드나무 같은 눈썹이 마야의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는 듯했다.
설화는 휴대폰을 손에 들고 “인도 여자”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인도의 여배우부터 거리의 여자들의 사진이 검색되었다. 휴대폰 속의 여자들과 마야의 얼굴을 비교해 보았다. 다르지 않았다. 커다란 눈, 긴 속눈썹, 오뚝한 코. 큰 입. 인도 여자들은 동양보다는 서양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화는 마야의 엄마, 마담 크리스나를 떠올렸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늙긴 했지만 젊은 시절에는 지금의 마야처럼 반짝였을 외모였다. 마야는 그녀의 엄마를 닮았다.
설화는 마야의 얼굴에서 이 씨 유전자를 떠올려 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마야의 얼굴에는 한국의 어떤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한국 사람과 서양사람 사이의 아이들은 그냥 외국인처럼 보이잖아. 한국 사람처럼 보이진 안잖아.’
설화는 생각이 여기까지 뻗어나가는 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단지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정작 마음속에서는 이미 확신을 하고 단정 지어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일단 물어보는 거야. 물어보면 확실해지겠지. 그게 나쁜 게 아니잖아? 그냥…. 그냥….”
설화는 마야를 생각하다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딸랑딸랑 종소리가 깊은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며칠 만에 익숙해진 찌릿한 향 냄새가 문틈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은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설화는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수도꼭지는 잘 잠겨져 있었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똑. 똑. 똑.
물방울 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하게 들렸다. 에어컨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설화는 에어컨을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오른쪽 벽 위에 있는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 놓아둔 책이 물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휴…. 이건 또 뭐야….’
설화는 흠뻑 젖어버린 책을 꺼내 들고 수건으로 꾹 눌렀다. 머리에 들어오진 않지만 뭐라도 읽고 뭐라도 쓰려고 가져온 책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책을 집중해서 읽지 못했었다. 복잡한 사색이 그녀의 머릿속을 헝크려트렸기 때문이었다. 책에 묻은 물기를 닦다가 설화는 자신이 작게 접어 놓은 부분을 발견했다.
[“간절히 원하면 지금 움직이세요. -노희경-
유리병 편지처럼 먼바다 돌아 새삼스레 내 앞에 이른 이것에, 나는 또다시 들썽거린다.]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에 설화의 마음이 들썽거렸다. 설화는 책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방 문을 열었다.
“안녕, 쎌. 좋은 아침”
마리와 존이 아침 카레를 먹고 있었다. 프랑스와 베트남의 역사에 대해 아웅다웅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친밀해져 서로의 아침을 챙겨주고 있었다.
“어, 안녕. 좋은 아침이야.”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저기 안비, 내 방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져.”
“어머, 정말요? 바로 사람 부를게요.”
“응. 고마워. 그리고 오늘은 나도 카레를 먹어보려고.”
“정말? 그래. 잘 생각했어. 지금껏 네가 카레를 안 먹길래 싫어하는 줄 알았지 뭐야. 이봐 안비, 쎌라가 카레 먹겠대. 한 그릇 부탁해.”
“네. 알겠어요.”
설화는 자신을 쎌 또는 쎌라라고 부르는 소리가 거슬렸다.
“저기 마리, 난 설화야. 설화. 내 입모양을 잘 봐. 설, 화.”
“쏘~올, 롸?”
“아니, 설화”
“너무 어려워. 그냥 쎌이라고 할래. 내가 좋아하는 게스트 하우스도 쎌. 내가 좋아하는 너도 쎌. 딱 좋은 걸.”
“어휴. 그래 너 맘대로 불러.”
안비가 카레를 한가득 담아 설화 앞에 내려놓았다.
“저 근데, 강철, 아니 아이언이 안 보이네?”
“아이언? 일찍 나가던데.”
“아 그래.”
매일 아침 보이던 그가 보이지 않자 설화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어제저녁, 강철과 마야가 포옹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설화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저기, 안비. 그런데 이 카레. 언제부터 만든 건 지 아니?”
“글세요. 마담이 만들기 시작했으니까요.”
“아 그렇구나. 저기... 마야에게 나중에 시간 있는지 물어봐 줄 수 있어? 마야를 좀 만나고 싶거든. 지금은 너무 이른 아침이니까. 편한 시간에.”
“네. 그렇게 전해 드릴게요.”
설화는 익숙한 맛의 카레를 먹으며 아빠를 떠올렸다. 이건 분명 아빠가 만든 카레 맛이었다. 설화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바로 비밀을 알아내야 할 시간이었다. 델리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