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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11. 2019

자연속에서 크는 아이들

친정, 고흥에서 지낸 시간들

시골에 있는 동안 큰아이 지안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하루 종일 둘을 시골집에서 데리고 있는 것이 조금 힘들기도 했고, 몇 달 만이라도 한국에서 기관에 보내고 싶기도 했다. 시골 어린이집 이였기 때문에 같은 반 아이들 중 몇은 다문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다들 동네가 멀리 떨어져 있고, 어린이집 버스로 통학을 해서 엄마들끼리 만날 수도, 누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도시처럼 엄마들끼리 친해지고, 만나고 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지안이의 첫 사회 생활이었다. 역시나 엄청 울어 대며 가기를 거부했다. 울며 불며 안 가겠다고 버티는 아이를 잘 달래보기도 하고, 억지로 끌기도 하면서 어린이집 버스에 태워 보냈다. 그 때 아빠가 큰소리로 한마디 했다 .

“무슨 어린이집을 안 간다고 울고불고 난리야. 당연히 가야지. 다 커서 왜 울어”

무서운 목소리로 한마디 하시는데, 내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닌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학교라면 아파도 꼭 가야했던 내 어린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빠, 당연히 가기 싫죠. 이제 겨우 다섯 살이고, 처음 가는 건데 이렇게 우는 게 당연한거에요. 뭐라고 하지 마세요.”

처음이었다. 아빠에게 이렇게 말 대꾸한 것이 처음이었다. 아빠도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그 뒤로 아빠는 아이들에게, 나에게 조금은 조심조심 말을 해 주었다.


엄마와 한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던 아이는 아침마다 울며 어린이집 가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이집을 재미있어 했다. 낮잠 자는 것을 너무 싫어했던 아이는 어린이집에서의 낮잠 시간을 제일 힘들어 했다. 그러면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게 있다는 것을 조금은 배운 것 같았다. 그리고 단체생활의 규칙과, 소풍의 재미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어린이집을 재미있어 하며 5개월을 다녔다.


지안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둘째 소은이는 오롯이 엄마인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소은이를 위해 모든 시간을 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지안이가 있으면 항상 지안이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야 해서 항상 소은이에게 미안했다. 하루 종일 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함께 돌밭에 앉아 물감 놀이도 하고, 할머니를 따라 밭에도 가고 논에도 가며 놀았다. 할머니 밭에 앉아 놀다 땅 속에 있던 개구리를 발견하고는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한 손으로 꽉 쥐며 장난 치기도 했다.

개구리 잡은 소은이

흙 위에서 뒹굴고, 시냇가에 발 담그고, 풀 밭에서 메뚜기도 잡으며 놀았다. 아침에 지안이의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며 길 바닥에 기어 다니는 공벌레를 잡으면서 놀았다. 시골집 마당에 피어 있는 민들레 홀씨를 불면서 놀았다.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오르리
책 사랑 소은이
자연과 함께 크는 아이들

우리는 자주 옆 집에 메어 있던 소에게 날마다 방문 인사를 했다. 소에게 풀도 먹여 주고, 장난도 치면서 놀았다. 그러다 심심해 지면 셋이서 숨바꼭질을 했다. 토요일이나 쉬는 날이면 과자나 물, 먹을거리를 싸서 여기 저기로 소풍을 가기도 했다. 시골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즐기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기억은 못하겠지만, 그 느낌만은 남아있기를 바랬다.

남편은 주말이면 우리들을 만나러 5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토요일에 와서 일요일에 올라가곤 했다. 남편은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 지안이가 아기였을 때 너무 멀리,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것들을 미안해했다.

남편이 오면 우리는 할머니 차를 타고 여기저기로 돌아다녔다. 옆 마을 바닷가에 가서 놀기도 하고, 썰물때가 되면 드러나는 갯벌에 내려가 조개도 주어보고, 게도 잡아보고 하며 놀았다. 멀리 있는 동네의 휴양림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오기도 했다. 읍내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올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를 열심히 놀아주고 남편은 일요일 오후에 다시 서울로 떠났다.

전라남도, 고흥

그때 소은이는 책에 집착을 많이 보였다. 하루 종일 책을 들고 다녔다. 밭에 갈 때도, 차를 타고 읍내에 갈 때도 항상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읽고 읽고 또 읽고 평생 읽을 책을 그 때 다 읽은 기분이었다. 책사랑은 역시나 밤에도 이어졌다. 밤에 자기를 거부하고 책만 읽어 달라고 했다. 자다가 새벽에 깨서는 배게 아래 넣어둔 책을 꺼내,

“엄마, 책…….”

그러면 또 읽어주어야 했다. 난 되도록이면 책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많이 힘들기는 했다. 소은이는 그 때 말도 정확하게 못하던 때였다. 돌때부터 시작된 책 사랑은 17개월에 절정이었다.

하루종일 책을 보는 아이

그때 난 지안이의 한글 노출을 위해 통 글자를 써서 방 여기 저기에 붙여 두었다. 하지만 지안이는 한글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노는 것이 좋은 아이였다. 물론 지안이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글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엄마의 목소리와 엄마가 읽어주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큰아이를 위해 붙여 두었던 통 글자를 소은이가 기억하기 시작했다. 소은에게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엄마?” 라고 했다. 우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이 아니었다. 지안이는 듣는 것을 좋아하고 들리는 것으로 학습을 하는 반면, 소은이는 눈으로 보는 것과 눈으로 학습이 빠른 아이였던 것이다. 17개월이었던 소은이는 간단한 통 글자들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소은이가 글자를 기억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간단한 글자를 적어서 방에 붙여 두고 자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어 주었다. 글자를 그림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반면 큰아이는 통 글자 기억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리고 싫어했다. 그래서 지안이는 나중에 7살이 되었을 때 낱 글자로 따로 가르쳤다. 아이들마다 성격이 다 다르듯이 학습 방법도, 시기도 다 다르다는 것을 내 두 아이를 보며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둘이 거의 비슷하게 글을 쓰고 읽는다. 빨리 시작해도, 늦게 시작해도 읽고 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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