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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엎질러진 후

다시 고칠 수 있을까?

by 선량

길었던 겨울방학이 끝났습니다. 델리 프랑스 학교는 웃기게도 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 개학 날이었어요. 그 날이 정말 개학날이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단톡 방에 올라온 담임 선생님의 “목요일에 만나요.”라는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정말 편견을 깨는 학교입니다.


이석증을 앓던 남편은 며칠 쉬고 약 먹고 자가 운동요법을 한 후, 많이 좋아져 출근을 했습니다. 여전히 어지러움증이 조금 남아 있지만, 먹고살아야 하기에 출근을 했죠.


정말 오랜만에 여유를 즐겼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 방해하는 사람이 없는 시간.

싱크대에는 여전히 씻어야 할 그릇이 쌓여 있지만, 언제나처럼 모른 척했어요. 조금만 더 따뜻한 전기장판 속에서 꾸물거리고 싶었거든요.


정신을 차리고 주방 정리를 하러 들어갔습니다.

헉!!! 그런데...

기름이 넘어져 있네요. 그 안에 내용물은 여기저기 흩어져있었어요.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어제 산 기름인데.... 모두 쏟아져 버렸어요.

그릇 건조대 아래로, 가스레인지 옆으로 기름이 흘러가 있었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싱크대엔 그릇이 한껏 쌓여있었고, 아침에 먹은 과일 껍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어요. 휴....




전 자주 실수를 합니다. 글을 쓸 때도 실수를 하도 많이 해서 발행했다가 다시 고치기를 여러 번 하고요, 회사 다닐 적에는 자판기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하도 넘어뜨려서 컴퓨터 자판기 틈으로 커피가 들어가기 일쑤였어요.

더 어렸을 적에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다 매 번 떨어뜨려 유리병을 깨뜨렸습니다.


집에서 깨뜨린 컵, 그릇은 셀 수도 없고요, 이가 빠진 그릇이 엄청 많아요.


저도 제가 왜 이렇게 덤벙대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제 딸이 이런 저를 꼭 빼닮았습니다.

자꾸 떨어뜨리고, 고장내고, 온몸에 묻히고, 매일 넘어져 다치고, 흘리고.




주방 선반에 있는 모든 것을 치우고 세제를 풀어 박박 닦았어요. 가스레인지 그릴도 빼다가 물에 담가 놓고 오랜만에 청소를 했습니다.

내친김에 청소기도 돌리고 밀대로 바닥도 닦았네요. 뭔가 일이 벌어져야 깨끗이 닦을 힘이 생기나 봅니다. 그 전엔 그리도 하기 싫더니.



집이야 이렇게 수습이 가능하지만, 사람에게 한 실수는 어찌해야 할까요?

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미 한 실수를 되돌릴 수가 없네요.

그래서 말도, 글도 유리병처럼 조심히 다뤄야 할 것 같아요. 떨어뜨려 깨트리기 전에 말이죠.


실수 투성이인 저는 오늘도 오타를 남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다시 들어가 고치고 또 고친 후 다시 발행을 누를 거예요.

사람과의 관계도 그럴 수 있었으면 참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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