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 소설
자정이 다 돼가는데 이 인간은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10시 즈음에 곧 온다는 사람이 소식이 없다. 부장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술을 워낙 좋아하는 인간인지 내가 다는데 무슨 부장님 핑계를 대고 있는지 원.
나도 맥주 한잔 하고 싶다. 모유수유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병나발을 불었을 건데.
내가 왜 완모를 하겠다고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었는지 모르겠다. 첫째 아이 때는 처음이라 젖이 잘 나오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무작정 젖만 물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분유를 섞어 먹였더니, 웬 걸, 이노무 시키가 내 젖을 빨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했다.
둘째를 낳을 때는 나름 준비를 했다. 애 낳고 첫날부터 가슴 마사지를 하고, 돼지 족발 하며 사골 하며, 젖에 좋다는 건 몽땅 사다 먹었다. 웬 걸,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겨버린 것이었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었는데 기름진 것을 잔뜩 먹어서 그렇다나. 할 수 없이 약을 먹어야 했고, 젖을 물릴 수가 없었다.
두 아이들에게 모유를 못 먹여서 그런지 둘 다 비리비리한 것 같고, 감기도 잘 걸리는 것 같고 그게 또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은 거다.
원래 셋째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이놈의 양반 때문에 덜컥 셋째를 임신하고야 말았다.
그래 봤자 남들은 이제 막 첫아기를 낳을 나이긴 하다. 셋째를 낳으러 분만실에 누워 있을 때, 대부분의 산모가 나랑 비슷한 연배였다. 하지만 난 셋째, 그들은 첫째.
간호사랑 의사들은 날 더 좋아하는 눈치였다. 첫째 낳는 산모들은 배 아프다고 난리도 아닌데, 난 셋째라 그러려니 했다. 이미 첫째 둘째 낳으며 넓어진 골반 덕분에 힘 한번 주니 퐁 나오기도 했다.
내가 이 나이에 셋째를 낳게 된 건 모두 그 자식 때문이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다 그 우체부 아저씨 때문이다.
원래 웅이랑 나는 어려서부터 같이 놀던 사이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놀았으니, 참 징그럽기도 하다. 맨날 만나서 총싸움하고, 숨바꼭질하던 사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축구하고, 야구도 하면서 남자아이들처럼 놀러 다녔다.
중학교에 올라간 후부터는 같이 놀기가 좀 쑥스러워졌다. 같은 반 여자 아이들 중에서 웅이가 멋있다고 하는 아이가 생겨났다. 같은 동네 사는 나한테 웅이 좀 소개해 달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난 그게 이해가 안 됐다. 저깐 놈이 뭐가 멋있다고?
학교 가는 길에 만난 웅이의 턱에서 거무스름한 수염을 보고야 말았다. 그걸 본 순간 이상하게 내 얼굴이 빨개졌다. 심장은 왜 또 그렇게 빨리 뛰는지.
웅이는 더 이상 초딩이 아니었다. 나보다 작던 녀석이 어느샌가 훌쩍 커 있었고, 염소 새끼 울음소리 같던 목소리는 엄청 굵게 변해 있었다.
걔가 변하는 동안 나도 조금씩 초딩 티를 벗고 있긴 했다. 이마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고, 가슴도 나와서 브래지어를 꼭 해야만 했다. 그런 변화들이 불편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어른이 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반 여자애들이 웅이에게 러브레터를 쓴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지들이 뭔데 러브레터를 써? 웅이는 나랑 제일 친했는데. 하지만 난 걔들한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걔내들이 웅이에게 진짜 러브레터를 쓸까? 웅이가 그걸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걔 성격에 그 편지를 받아줄 것 같진 않은데. 걔가 그런 애가 아닌데. 고민하다 밤잠을 설치고 말았다.
웅이를 뺏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상한 계집애랑 사귀기라도 하면 난 어쩌라고.
학교 앞 문구점에는 하트, 꽃무늬, 곰돌이 무늬가 있는 편지지와 봉투가 있었다. 그중에 연분홍 하트가 그려진 편지지와 봉투를 샀다. 좀 유치하긴 하지만, 그래도 꽃무늬보다는 하트가 낫지 않을까?
밤새 고민하며 편지를 썼다. 어렸을 때 같이 놀았던 이야기도 쓰고, 지금 학교 생활이 어떤지도 썼다.
널 좋아하는 것 같다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난 그저 걔와의 추억을 썼을 뿐이었다. 우표를 붙이고 집 앞 우체통에 넣었다.
학교에 와 보니, 걔네들이 막 떠들고 있었다.
“나 이따가 웅이 만나서 편지 주려고.”
“직접?”
“응. 학교 끝나고.”
“우와, 너 대단하다. 어디서 주려고?”
“학교 앞에 놀이터 있잖아. 거기서.”
“만나자고 말은 했어?”
“아직. 이따 점심시간에 말하려고. 같이 가줄래?”
헉, 큰일 났다. 편지는 직접 주는 거였구나. 난 우체통에 넣어버렸는데, 이를 어쩐다.
오늘 쟤네들이 만나서 사귀기라도 한다면?
내일 내 편지가 그 자식한테 간다면?
아! 망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순수한 첫사랑의 추억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