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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9. 2020

4. 샴푸 대신 비누, 염색 대신 고잉 그레이

마흔 하나, 염색하지 않기로 했다.

뭄바이 살 때의 일이다.

둘째 딸아이는 한 번씩 친한 친구 집에 가서 자고 오곤 했다. 내 아이보다 한 살 어렸던 그 친구는 형제자매가 없었기 때문에 한 살 많은 언니(내 아이)를 몹시 좋아했다. 딸아이 역시 무뚝뚝한 오빠만 있고 동생이 없었기 때문인지, 한 살 어린 동생을 몹시도 아꼈다.


둘이서 신나게 논 후엔 친구의 엄마가 차례로 샤워를 시켜 주었는데, 부드럽고 순한 유아용 샴푸와 바디 샴푸를 사용해 아이들을 씻겨 주었다. 그 걸 본 내 딸아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뭐예요? 우리 집엔 그런 게 없어요. 원래 어린이용 샴푸가 따로 있는 거예요? 우리 집엔 비누만 있어요.”

다 씻고 난 후엔 향기로운 바디로션을 발라 주었는데,

“이건 왜 발라요? 우리 엄만 이런 거 안 발라 주는데.”

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전해 듣고 괜히 부끄러웠다. 내가 샴푸나 바디로션도 사용하지 않는 원시인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첫 아이를 낳았을 때는 나 역시 순한 베이비 샴푸와 바디샴푸를 구비해 놓았었다. 여기저기 폭풍 검색을 해 가장 순하고 좋다는 바디로션을 사다 놓기도 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에 살면서 이 모든 게 어려운 일이 되었다. 현지 마트에서 파는 베이비 샴푸와 로션이 썩 내키지 않았다. 향은 강했고, 거품이 너무 잘 나왔다. 덥고 습한 나라에서는 바디로션 또한 필요하지 않았다. 쓰지 않던 베이비 바디로션은 결국, 유통기한이 지나 모두 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들용 샴푸를 사지 않고 천연 비누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방글라데시에는 천연 헤나의 원료가 되는 님(neem)이라는 나무가 있다. 그 나뭇잎과 오일은 피부 트러블에 꽤나 좋아서 마시는 차, 오일, 헤나, 비누 등으로 만들어 판매된다. 그중에 님 천연 비누를 사다 쓰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 1살 때부터 사용했으니, 거의 6년 넘게 비누를 사용한 샘이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아토피나 피부 트러블이 없다. 그래서 더욱 안심하고 비누를 사용할 수 있었다.

 

샴푸 대신 비누를 사용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환경 호르몬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시중에 나오는 베이비 샴푸나 바디로션이 나쁜 화학 물질을 빼고 좋은 원료로만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더욱이 셋째 언니는 화장품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시대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임이 많은데,

이게 모두 환경 때문이라는데, 먹는 것 입는 것에서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씻는 것 만이라도 보호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샴푸나 바디로션에서 환경 호르몬이 나온다는 법적 증거는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온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어릴 적, 시골에서 세숫비누 하나로 씻고 머리 감았던 게 기억이 났다. 나이가 어릴수록 환경 호르몬의 영향을 받기가 더 쉽다고 한다. 그때 결심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요구하기 전까지는 샴푸로 씻기지 않겠다고. 바디로션 역시 쓰지 않겠다고. (

겨울에 날씨가 건조해지면, 인도산 코코넛 오일을 발라준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극성스러운 엄마 같지만 사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게으른 엄마가 맞을 것 같다. 비누 하나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문질러주고, 물로 씻겨주면 끝이다. 비누라서 그런지 물에 잘 씻겨진다. 샴푸 사용 후 남아있는 미끈거림이 없다. 아이들의 머릿결은 정말 신기하다. 비누로 감겨도 전혀 뻣뻣하지 않다.   



3개월 전에 머리를 커트로 자른 후, 나 역시 비누로 머리를 감고 있다. 머리가 길었을 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길고 머리숱이 많아 비누로는 어림없었다. 거품이 나지도 않았다. 반복된 새치 염색으로 머릿결도 좋지 않았다. 샴푸로 감고 린스나 트리트먼트를 꼭 해줘야 했다.

지금은 아이들처럼 비누 하나로 끝낸다. 머리가 뻣뻣한 느낌이 있지만, 요즘처럼 밖에 나가지 않는 날엔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


며칠 전, 첫째 아이가 한 말 때문에 고민을 좀 했다. 염색약을 사 와야 하나, 염색을 해야 하나…….

그런데 지금 시국에 염색약을 살 수도 없고, 미용실에 갈 수도 없다. (전국 봉쇄령이 연장되었다.) 아들아이와 남편의 머리카락 역시 자르지 못해 단발이 되어가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잉 그레이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어버이 날을 맞아 친정 엄마와 영상통화를 했다. 하얗게 변한 내 옆머리를 비춰보였다. 엄마는,

“머리가 왜 그래? 엄청 심해졌네?”

라며 깜짝 놀라셨다. 난 그냥 허허허 웃고 말았다.


나중에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머리 전체가 하얗게 변해 있다면, 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설마, 고생을 심하게 해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이게 다 흰머리 유전자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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