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의 한 끗 차이

행복이 고통의 부재라는 말은 틀린 생각이었다.

by 선량


이틀 전, 생일날 아침.

구역 집사님이 신경 써서 보내준 생크림 케이크를 꺼냈다. 케이크 가운데엔 딸이 좋아하는 망고가 올려져 있었다.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후~

한 번에 그 많은 촛불을 껐다. 포크를 들고 다 같이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먹는 생크림 케이크는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갑자기 울컥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 뭐지.... 나 왜 이러지... 이상했다.

“엄마 왜 울어?”

케이크를 먹다 울고 있는 날 가족들은 이상하게 쳐다봤다. 화장실로 뛰어가 세수를 했다. 벌게진 내 얼굴이 실연당한 사람의 얼굴 같았다.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포크를 들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엔 그냥 내버려 두었다. 딸이 건네준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케이크를 삼켰다.

“너무 기뻐서 우는 거야?”

아들이 물었다.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 우울증’이 가장 맞겠다.


우울한 감정은 갑자기 찾아왔다.

전날 저녁, 생애 첫 강의를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었다. 공헌감에 흠뻑 빠져 있었다. 쫌 잘 산 것 같다며 으쓱해졌다.


강의를 진행했던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니, 반짝이는 옷은 사라지고, 무채색의 옷만 남아있었다.


밝은 초록색이었던 소파는 칙칙한 카키색이 되어있었다. 여러 번 이사하느라 힘들었는지 다리 하나가 흔들렸다.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는다. 과자 부스러기가 소파 깊숙이 들어가 청소하기 힘든 날들이 지속되었다.


결혼할 때 산 꽃무늬 이불은 여기저기 찢어지기 시작했다. 틔어 나온 솜을 볼 때마다 저걸 꼬매야 하나, 버려야 하나, 하나 새로 사야 하는데, 살 곳은 없고, 한국에 가서 사 와야 하는데.... 매번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한다.



외부인을 못 만난 지 3개월째.

온라인으로 얼굴을 보고, 카톡으로 매일 대화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거리는 손을 내밀면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서로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은 비대면 만남이 오래될수록, 나는 더욱 외로워졌다.

가족이, 친구가, 엄마가 더 그리운 이유는, 이 때문인가 보다.

친구와 카톡을 하다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울컥 쏟아진 눈물을 애써 참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이 감정도 내 감정이라는 것을 이젠 안다.


언제 이 생활이 끝날까? 코로나가 사라지긴 할까? 한국엔 갈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을까?

분노의 시간을 지나 곧 끝날 거라는 현실 타협의 시간을 넘어 드디어 자포자기의 시간에 도달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이 생활은 지치게 만든다. 하루 세 끼 밥을 하는 일도, 설거지를 하는 일도, 두 아이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과제를 하는 일도 일상이 되었지만, 해도 해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적응하고 싶지 않다는 게 맞겠다.



오래전에 사용하던 노트를 꺼냈다. 그곳엔 3년 전 내가 써 놓은 글과 필사한 글이 있었다.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상태 중 하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상태다. 특별히 그 대상이 사람일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프로이트가 일찍이 말했듯이, 행복해지고 싶다면 사랑에 빠지는 것이 좋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한 상태가 가장 행복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이란 가슴에 관심 있는 것 하나쯤 담고 사는 삶이다.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는 관심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행복이 고통의 완벽한 부재일 것이라는 생각은 완벽하게 틀린 생각이다. 그것은 마치 완벽한 부부 생활이란 부부싸움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행복은 비장한 전투에서 얻어내는 승리가 아니다. 행복은 우리 삶에 우연히 찾아와 준 것들에 대한 발견이다.



최인철 교수님의 ‘굿 라이프’ 책을 읽고 필사 한 내용이었다.



행복하다고 해서 우울한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고, 우울하다고 해서 불행한 것도 아니다.

우울한 감정도 공헌감이나 뿌듯함 못지않게 주요한 감정인 것이었다. 이 모든 감정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진짜 행복한 것 아닐까?


행복과 불행은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힘들고, 외롭고, 우울함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도 몇문장의 위로로 벌떡 일어날 힘이 생기는 거 보니 말이다.



오랜만에 펜을 잡았다. 그동안 멈추어 있었던 그림을 다시 그렸다. 선을 긋고 패턴을 그리는 몰입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우울한 감정은 인사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그린 그림에 글을 입혔다. 글과 그림을 보며 다시 웃었다.


이 생활도 언젠가는 인사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 그땐 다 함께 소리를 질러 보자고 생각했다.

아주아주 큰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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