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도 온라인으로 해야 하는 시대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

by 선량

아이와 함께 “뉴턴”책을 읽다가 “페스트”라는 단어에 눈길이 멈추었다.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후, 대학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려고 했던 시기에 유럽 전역에 “페스트”가 퍼졌다고 한다. 결국 대학은 문을 닫았고, 뉴턴은 고향집으로 가야 했다는 이야기였다. 궁금했던 것은 페스트가 언제 퍼졌고 언제 사라졌는지였다.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 정도를 앗아간 페스트.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페스트가 처음 유행한 때는 1347년~1351년이라고 한다. 무려 4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말이다.

뉴턴은 1665년에 페스트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1667년에 페스트가 잠잠해지자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고 하니, 거의 2년 동안 전염병이 사라지지 않았었나 보다.

그렇다면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는 도대체 얼마나 갈까? 언제쯤 사라질까?


“엄마, 벌써 1년 된 것 같은데? 학교 못 간지 엄~청 오래됐잖아~”

이제 네 달째인데 아이들에겐 시간이 훨씬 더 길게 느껴지나 보다. 하긴, 이 나이 때 시간은 엄청나게 느리게 지나가니까.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으로 느껴질 테니까.


교회 분들 중에 한국으로 귀임하는 분들이 생겼다. 지난달에 들어가신 분이 여러분 계시다. 그분들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으니, 가시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얼마 전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던 집사님 가정이 곧 한국으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제 겨우 두 손 함께 치는 걸 시작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계속 못 가고 있었더랬다.

집사님과 카카오톡으로 이별을 했다.


너무 슬펐다. 몇 년을 산 이곳인데, 사람들과 얼굴 보며 인사도 못하고, 환송받으며 떠나지도 못하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속상했다.


둘째 아이 반 단톡 방에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다. 한 가정이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한다. 여러 학부모 중에서 특히나 동양 사람인 날 환대해 준 엄마였다. 집에 초대해 함께 식사를 했던 사이였다.

이번에도 메시지로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인도는 여전히 전국 봉쇄를 풀지 않았고, 통행이 자유롭지 못하고, 학교 역시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있을 거예요? 들어가요?”

“아니요, 안 가요. 들어가세요?”

“아니요, 우리도 안 가요.”

이곳에 사는 한국 사람들의 안부 인사는 “가? 안 가?”가 되었다.



온라인으로 미팅을 하고, 회사 일을 하는 시대.

나 역시 온라인으로 책을 만들었고, 홍보를 하고 있고, 강의를 했다.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여러 일이 가능한 지금이 많이 놀랍다.

하지만 이별 조차도 온라인으로 해야 한다는 현실은 많이 슬프다.


그렇게 지독했던 페스트가 결국 사라진 것처럼, 코로나도 언젠간 사라지겠지?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한 가지 희망스러운 일은,

뉴턴이 페스트 때문에 고향에 가 있던 시절에 바로 사과나무 아래 앉아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시기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냈고, ‘빛의 굴절 법칙”을 알아냈다고 한다.


럭다운 시간 동안 이런 위대한 법칙을 알아낼 순 없겠지만, 절망 대신 희망을 가지고 살아볼 순 있겠지.





마음이 복잡하고 슬퍼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슬픈 소설책을 읽으며 눈물을 펑펑 쏟고 나니 머리는 멍 해지고 눈은 퉁퉁 부었다.

머릿속에는 써야 할 말들이 떠오르는데 그 말이 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신 냄새나는 이불을 빨았다. 구석에 쳐 밖혀 있던 모기장도 꺼내 빨았다. 한국으로 들어가는 집사님이 주신 빨래 건조대를 펼쳐고 이불을 널었다. 햇살이 엄청 뜨거웠다.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되었다.


“엄마, 우리 꺼보다 집사님이 주신 게 더 좋아 보여.”

“그러네.”



친했던 사람들과 손을 잡고 포옹하고, 잘 가시라

꽃다발을 안겨주며 이별하는 일.

이별을 이별답게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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