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서투른 가족, 그래서 완벽한 가족
화요일, 둘째의 영어 수업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첫째의 수업은 1시 30분이었다. 아침시간에 숙제를 조금 봐주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거실 한 구석에 인형을 잔뜩 늘여놓더니, 인형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주방에 씻어야 할 그릇이 많이 있었지만,
“내버려두어. 내가 할게.”
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그냥 냅 두었다.
둘째의 영어 선생님이 바로 오늘 영어 받아쓰기를 할 테니 노트를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헐..
부랴부랴 구글 클래스룸에 들어가 과제를 확인했다. 언제 과제가 올라왔는지도 모를 과제들이 수두룩하다. 내가 놓치고 만 것이다. 받아쓰기하겠다는 말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후에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미리 준비할 필요는 없어요. tricky words spelling test 일 뿐이에요.”
“소은아, 받아쓰기 공부할까?”
“나 하기 싫은데... 오빠랑 더 놀고 싶은데...”
“그래, 나도 하기 싫다. 놀아라. 네가 알아서 해.”
결국, 아이들은 놀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
남편은 안방에서 온라인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12시가 다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이제 슬슬 점심을 준비해야지, 생각하며 주방에 갔는데.....
아뿔싸...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밥도 없다. 곧 수업 시작인데......
부랴부랴 냉동실에 있던 스파게티를 꺼내 치즈를 뿌려 둘째에게 먹으라고 내놓았다.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남편의 회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둘째는 스파게티(사실은 삶은 스파게티면에 모차렐라 치즈만 뿌린)를 옆에 두고 수업을 시작했다.
스파게티를 오물거리며 받아쓰기하는 아이를 내버려 두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남편의 회의가 끝났다. 남편에게 설거지 바통터치를 하고 점심밥을 하기 시작했다. 곧 첫째 아이의 프랑스어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부랴부랴 볶음밥을 만들어 그릇에 담고 들고나가려는 찰나,
그릇이 바닥에 떨어졌다. 밥그릇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 그 옆에서 남편은 설거지를, 둘째는 식탁에서 받아쓰기를, 첫째는 거실에서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시간이 정지되었다.
빠르게 초등학생 6학년 시절로 돌아갔다.
언니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방 두 칸짜리 3층 집. 하필 대학교 앞이라 봄이 되면 체류탄 냄새가 창문 틈을 타고 들어왔다. 치약으로 눈과 코 아래에 바르면 덜 맵다는 말을 듣고, 셋째 언니와 따라 했다가 더 매운 치약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난 매일 그릇이나 물병을 깨트렸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다 손에서 미끄러져 깨트렸고, 설거지를 하면 매번 접시 하나씩을 깨트렸다.
그런데, 할머니도 언니들도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혼내질 않았다.
결혼을 해서도 자주 그릇을 깨뜨렸다. 컵, 접시,
밥그릇 등등...
물건을 잡을 때 일부러 힘을 줘 잡는 버릇이 생겼지만, 방심하는 순간 물건이 내 손을 벗어나 미끄러지듯 떨어지고 말았다.
하필, 둘째 딸이 그런 날 닮았다.
매번 흘리고 떨어뜨리고 깨트린다.........
깨진 그릇 조각을 빗자루로 쓸어 담았다. 남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설거지를 계속했고, 둘째는 계속 수업을 하고 있었다.
다시 볶음밥을 담아 첫째에게 가져다주고 컴퓨터를 열어 수업 준비를 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조심 좀 하라는 말이나, 왜 그 모양이냐는 말도 없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냥 시간이 흘렀다.
10년 차 엄마임에도 여전히 서툴고 서툴다. 엄마가 하고 싶은 일과, 집안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게을러진 모습을 보이고 만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남편은 나에게 불평하지 않는다.
나는 그게 정말, 너무 고맙다.
조금은 서툴기에, 완벽하지 않기에, 실수해도 눈감아 주기에, 모른 척해주기에,
그래서 더욱 우리는 완벽한 가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