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과정 중에 있는 우리를 위해
매주 금요일은 좀 바쁘다. 두 아이의 수업이 연달아 있기도 하고, 매 주 금요일마다 프랑스어 받아쓰기 시험을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면 전날 보지 못했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 드라마를 금요일 아침마다 보는 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구글 클래스룸에서 확인해 보니, 꽤 어려운 단어가 올라와 있었다. 아이와 함께 두 번 정도 연습 을 한 후, 내일 아침에 다시 공부하자고 말 하고 컴퓨터를 껐다.
둘째의 프랑스어 수업은 10시 15분. 아침을 부랴부랴 먹이고 아이를 테이블에 앉혔다. 그리고 어제 써 보았던 단어를 다시 불러주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기억하고있지 않았다.
쓰는 게 너무 어려워. 단어가 너무 어려워. 발음이 이상해, 소리가 안 나는 알파벳이 있어서 못하겠어......
불평을 쏟아내는 아이에게,
“그래. 당연히 어렵지.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하는거야. 모르겠으면 3번 더 써보고, 그래도 모르면 두번 더 써봐야지.”
“그래도 모르겠으면 백 번 써야겠네?”
“당연하지. 그렇게 모르는 걸 알게 되는거야. 그렇게 했는데도 틀렸다면 어쩔 수 없는거지. 노력을 했으니 괜찮은거야. 하지만 노력도 하지 않고 결과가 안 좋다고 짜증을 내는 건 안 되는거야.”
하지만 아이는 계속 툴툴 거렸다. 얼굴엔 짜증이 잔뜩 담겨 있었고, 괜히 연필 핑계를 댔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대신 나중에 딴 소리 하지 마.”
컴퓨터를 닫고 주방으로 가버렸다. 갑자기 화가 잔뜩 났다. 마음이 분주하고 시끄러졌다.
난 아이들에게 항상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열심히 했으면 그걸로 된거라고, 시험을 못 봐도 된다고,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가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시험 못 봤다고 속상해 하지 말라고.
이 말이 사실일까? 정말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할까?
정말 열심히 글을 공부하고 썼다.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좋은 책이 워낙 많기 때문에, 내가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읽고 공부하고 쓰는 일 뿐이었다.
내 열심과 성실은 내가 발행한 브런치 글이 400개가 넘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어찌됬든 책을 두 권이나 냈으니 그것으로도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기획출판으로 낸 책도, 독립출판으로 낸 책도 독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지 못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책을 읽어주고, 좋은 서평을 써 주신 분들에겐 너무나도 감사하다. 하지만, 내 열심의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간절함 앞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간절함의 과정이 좋은 결과까지 가져다 주진 않았다.
형편없는 결과가 나의 노력까지 헛되이 시키진 않겠지만, 그게 꼭 내 글에 대한 점수인 것만 같았다.
감사하게도, 두번째 책을 독립출판으로 낸 후 좋은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알게 되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필연같은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이 내 책을 읽고, 공감받고 위로 받았다고 했다. 브런치에서 읽었던 내용보다 더 좋았다고 했다.
난 그들에게 빚진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작가 책을 읽어 준, 출판사도 없이 혼자 만든 책을 읽어 준, 소수의 독자들에게 난 큰 절을 하고 싶어진다.
난 지금, 잘 가고 있는 것일까?
하고 싶은 마음에 능력도 없으면서 막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작은 씨앗이 캄캄한 흙을 뚫고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밀듯, 우선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려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 떨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살아 보니 틀린 길은 없었다. 시도한 일이 혹시 실패한다 해도 경험은 남아서 다른 일을 함에 있어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 볼 여지가 있다면, 씨앗이 껍질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듯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우종영, 한성수 저
어두운 흙속에서 작은 씨앗으로 살다가 용기내어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 껍질을 뚫고 나왔으니, 두렵고 떨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책속의 문장은 말했다.
열심히 글을 써서 책을 냈지만, 결과는 실패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경험도 내 삶에 녹아들어서 또 다른 경험을 가져다 줄까?
누군가 물었다. 왜 글을 쓰느냐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즐거우니까 써요. 다른 이유 필요있나요?”
즐거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글을 쓴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마 계속 쓸 것같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님을 위해서, 내 책을 읽고 눈물 흘렸다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리고 글쓰는 과정이 즐거운 나를 위해서.
받아쓰기를 무사히 마친 아이의 얼굴 표정이 좋아보였다.
“거봐, 미리 공부하고 받아쓰기 하니까 훨씬 자신감 넘치지? 처음엔 어려웠는데, 연습하니까 쉬워졌지?”
“응, 나 다 맞았어.”
과정만큼 결과도 좋아서 참 다행이다. 엄마도 너처럼 결과까지 좋은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