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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21. 2020

한여름에 먹는 팥죽 한 그릇

엄마의 동지죽과 인도에서 만든 팥죽


아무리 냉장고를 뒤져봐도 먹을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인도의 전국 봉쇄령으로 외식 못한 지 4개월,

마트에 못 간지 3개월이 지났다. 한 번씩 한인 마트에 주문을 해 필요한 식품을 사긴 하지만 뭔가 많이 부족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 삼시 세 끼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 봤자 매번 음식 돌려막기 수준이긴 하다. 한정된 재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낼 재간이 없다.

아이들은 맛있는 거 먹고 싶다 아우성이지만, 굶지 않고 이런 거라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라고 강요한다. 



냉장고를 열고 위칸부터 아래칸까지 스캔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리할 만한 게 없다. 냉동고 문을 열었다. 다시 한번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맨 아래칸에 가서 시선이 멈추었다. 서랍을 열었더니, 팥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가을, 한국에 갔을 때 엄마가 챙겨 준 팥이었다.  

“팥죽 어때?”

“좋지.”

냉동고에 들어있던 팥을 꺼내 물에 담가 두었다. 점심은 대충 라면으로 때우고 저녁때 즈음 팥죽을 만들면 될 것 같았다.  그 날, 뉴델리의 기온은 40도였다.





작년 가을, 칠순이 넘은 엄마는 허리가 많이 안 좋으셨다. 겨울에 허리 수술을 하려고 날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눈에 가득한 농촌 일을 못 본 척할 수도 없었다. 엄마의 밭에는 보랏빛으로 익어가고 있는 팥이 가득 있었다. 일 년 만에 찾은 친정에서 나와 아이들은 팥을 땄다. 시골집 마당에 커다란 파란색 돗자리를 깔고 팥깍지를 널어 두었다. 아직 익지 않아 초록색인 팥 알이 잘 익도록 햇볕에 말려야 했다.

하루 정도 지난 후부터 두꺼운 방망이를 들고 팥깍지를 향해 내리 쳤다. 매를 맞은 팥 알들이 깍지에서 튀어나왔다. 필요 없는 깍지는 골라서 버리고 보랏빛의 팥알만 주어 담으면 되었다.

하루 종일 수그려 팥을 따고 있으니 허리가 천근 만근이 되었다. 허리가 아파 잘 걷지도 못하는 엄마가 혼자서 이 일을 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꾸만 코끗이 찡해졌다.

엄마의 마당엔 자갈들이 깔려 있다. 팥알 여러 개가 돗자리를 벗어나 돌멩이 사이사이로 숨어버렸다. 엄마는 그게 또 아깝다며 돌멩이를 헤치며 팥을 찾아냈다. 

“팥은 콩 중에서도 가장 효자란다.”

“왜?”

“팥이 제일 비싸거든. 시골에서 돈 나올 구멍이 어딨어. 다른 콩들은 엄청 싸거든. 한 되에 얼마 받지도 못해. 그래도 팥은 한 되에 만원 넘게 받거든.”


엄마는 그 말을 하면서 씽긋 웃으셨다. 멀리 외국에 사는 딸보다 돈이 되는 팥이 엄마에겐 효자라는 말처럼 들려 다시 한번 코끝이 찡해졌다. 얼른 일어나 자갈 속에 숨은 작은 팥알을 찾아냈다.





잘 불려진 팥을 건져내어 깨끗이 씻었다. 냄비 가득 물을 붓고 팔팔 끓였다. 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금 덜어내고 끓는 물에 팥을 넣었다. 혹시나 팥이 냄비에 눌어붙을까 걱정이 되어 주방을 떠나지 못했다. 냄비 뚜껑을 열어 놓고 팥이 익나 안 익나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주방 가득 뜨거운 열기가 채워졌다. 가슴 사이로 땀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는 겨울 방학이 시작하고 나면 팥죽을 쑤셨다. 아마도 동짓날이었던 것 같다. 팥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왜 팥죽을 쑤느냐고 매번 물어보았다.

“이맘때는 팥죽을 먹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나쁜 기운이 사라지고 복이 오는 거야. 팥죽 색깔이 불구죽죽하지? 구신이 이걸 싫어한다고 그래. 옛날에 엄마 어렸을 적에는 팥죽을 한 솥 끓여서 가족들도 먹구, 뒷산에도 한 그릇 떠다 놓구, 마당에다 뿌리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거 안 허지. 그래도 먹긴 먹어야지. 그래야 내년에 또 복이 오고 건강하거든.”


엄마가 팥죽을 쑤면 나와 언니, 동생은 부엌 작은 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면 엄마는 큰 대야에 담긴 반죽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는 빙 둘러앉아 새알을 만들었다. 동글동글 예쁘게 새알을 만들다가 지루해지면 눈사람도 만들고, 돼지도 만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새알은 점점 커져갔다. 해도 해도 끝나지가 않았다.

한참 새알을 만들고 있으면 엄마는 새알을 넣은 동지 팥죽을 한 그릇씩 담아 왔다. 새 알을 만들다 말고 팥죽을 먹었다.

“앗 뜨거워!!”

팥죽도 뜨거웠지만, 새알은 더 뜨거웠다.

“아따, 조심해라. 새알 뜨겁다.”

이미 입안은 데어버렸지만, 아픔을 꾹 참고 호호 불며 입안에 팥죽을 밀어 넣었다.




“엄마, 팥죽을 쑤었는데, 새 알을 어떻게 만들어야 돼?”

“동지죽 만들라고?”

“응”

“새알 만들라믄, 찹쌀가루랑 맵쌀 가루가 있어야 하는디.”

“없는데…….”

“그럼 그냥 팥 칼국수를 해 먹어. 밀가루는 있지?”

“아, 그러면 되겠구나. 엄마 팥죽 만들 때 다른 거 뭐 넣어야 돼?”

“그냥 팥 삶아서 갈아서 설탕 넣구, 소금 넣구 간 맞추믄 되지.”

“어, 알겠어요.”

전화를 끊고 얼른 밀가루를 꺼냈다. 잘 익은 팥은 냄비 뚜껑을 열고 식혀 놓았다.

밀가루에 물과 소금을 넣고 반죽을 했다. 인도 밀가루는 한국 밀가루보다 약간 거칠다. 강력분, 중력분 그런 거 없이 그냥 ‘머이다’라고 하는 밀가루인데, 평소에 이걸 이용해 수제비도 해 먹고, 칼국수도 해 먹곤 했다.

밀가루 반죽을 하며 이걸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품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였다니. 밀가루 반죽을 끝내고 랩에 잘 싸서 냉장고에 넣었다. 이제 팥을 갈아야 한다. 한소끔 식은 팥을 믹서기에 넣고 갈았다. 너무 뻑뻑해 덜어 놓았던 물을 조금씩 부으며 갈아야 했다. 다 갈아진 팥을 냄비에 모두 넣고 설탕을 넣었다. 맛이 영 달지가 않다. 다시 한 스푼 듬뿍 넣었다. 뭔가 맛이 부족하다. 소금을 조금 넣고 다시 맛을 보았다. 이제야 팥죽 맛이 났다. 물을 조금 붓고 다시  한번 끓였다.  잔뜩 열기를 머금은 팥죽이 위로 툭툭 올라왔다.

‘앗 뜨거워’ 

끓어 오른 팥죽에 손등을 데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차가운 물에 손을 얼른 씻고 냉장고에 넣어 둔 반죽을 꺼냈다. 밀대로 얇게 민 후, 칼로 싹둑싹둑 잘라 면을 만들었다. 서로 엉겨 붙지 않게 잘 두어야 했다.  


드디어 끓고 있는 팥죽에 칼국수 면을 투하했다. 고소한 팥죽 냄새를 맡은 남편이 주방으로 들어왔다.

“다 됐어?”

“응, 거의 다.”

“엄청 오래 걸리네.”

“온종일 걸렸어. 두 번은 못하겠어. 너무 덥고 힘들다.”


오전에 시작한 팥죽 만들기가 저녁이 되어 끝이 났다. 그릇에 예쁘게 담아 사진을 찰칵 찍어 엄마에게 전송했다.

“맛있어 보이네 잘했네.”


동짓날 차가운 바람이 불 때 먹었던 팥죽은 헛헛한 내 배를 채워 주었는데, 더운 여름날 팥죽을 만들다 더위 먹을 뻔했다.

그 옛날 먹었던 그 맛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직접 키운 팥이라 그런지, 아니면 내 정성이 가득 담긴 팥죽이라 그런지 괜히 맛있게 느껴졌다.


아마도 설탕이 듬뿍 들어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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