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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23. 2020

지금의 내가 가장 예쁘다.

사실은 가장 못생겼지만,


가족 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15년 전 즈음에 언니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선량이 이때가 리즈 시절이네.”

“예쁘고 젊었다야.”

“그러게, 예뻤네. 이럴 때가 있었네.”

20대 중반의 나는 참 예뻤다.(주관적 입장으로, 지금보다 예쁘다는 뜻입니다.)



내가 가장 예뻤던 때는 20대 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를 위해 돈을 썼다. 월급을 타면 옷이나 구두를 샀고,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다녔고, 좋은 화장품을 샀다. 액세서리도 유독 화려한 걸 좋아했다. 돈을 모아 라식을 하고 안경도 벗어던졌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0대의 나는 예쁘지 않았다. 얼굴엔 여드름이 잔뜩 나 있었고, 안경을 쓰고 다녔다. 반항을 하진 않았지만 얼굴엔 우울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돈은 없었고, 공부는 하기 싫었으며, 아침마다 배가 아팠다. 얼굴에서 웃음을 찾기 힘들었다.



30대의 나는 그냥 엄마였다. 특별한 직업도 없고,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엄마.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 내 시간과 공간은 없는 엄마.

늘어진 옷을 입고 다녔다. 어쩌다 한번 화장을 하면 잘 먹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다녀야 했기에 액세서리는 하지 못했다. 머리는 질끈 동여매고 다녔고, 그 사이로 새하얀 새치가 보였다.

그런 나 자신이 많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시 일이란 걸 할 수 있을지, 집에만 콕 틀어박혀 있다가 세상과 영원히 단절돼 버리는 건 아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나이만 먹고 있는 건 아닌지.

내 핸드폰엔 아이들의 모습이 가득 들었지만, 내 모습은 없었다. 사진만 찍었다 하면 피곤에 찌든  내가 보여 매번 삭제 버튼을 눌렀다.



다시 셀카를 찍기 시작한 건 얼마 전부터이다.

고잉 그레이를 실천하고 있는 지금, 머리카락의 변화를 찍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흰머리가 염색약으로 숨겨져 잘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투톤의 머리색이 되었다.  투톤 컬러 염색을 하고 싶었었는데, 그냥 자연적으로 돼버렸다.^^;;;;; 

 


마흔이 넘은 지금,

염색하지 않은 머리는 하얗게 변하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엔 기미가 가득하다. 처진 눈과 주름은 애교에 불과하다. 운동하지 않은 몸은 탄력을 잃었고, 배는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내 모습이 나는 가장 좋다.  짧은 머리의 내가, 흰머리의 내가, 배가 나온 내가, 기미가 가득한 내가 좋다.  



우리 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바로 나이다. 이런 날 보며 아이들은 늙었다고 말한다. 짧은 머리의 엄마를 보며 못생겼다고 놀린다.

"그래, 엄마 못생겼어. 그래서 뭐?"

"응, 맞아. 엄마 늙었어. 그러니 조심해."


노화의 과정은 삶의 쇠퇴가 아닌 성숙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른답게 나이 들고 싶다. 나이 드는 내 외모와 모습을 거스르거나 거부하고 싶지 않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과연 내 얼굴에선 어떤 책임 있는 표정이 나올까?

십 대의 우울했던 얼굴, 이십 대의 발랄했던 얼굴, 삼십 대의 피곤에 찌든 얼굴이 모두 함축된 표정이지 않을까 싶다. 난 그게 성숙한 자의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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