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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02. 2020

힘든 오늘도 결국, 과거형이 되고 맙니다.

행복일까? 아닐까?


둘째 아이는 한 번씩 뭄바이가 그립다고 말합니다. 뭄바이에 있는 친구와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해요. 첫째 아이는 뭄바이에서 살던 아파트에서 놀던 게 그립다고 합니다. 주차장 한 곳에 돗자리 깔고 놀았었거든요.



 다들 뭄바이를 인도의 경제도시이자 인도 영화의 산지인 발리우드의 도시라고 하죠. 하지만 저에게 뭄바이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작년 8월에 뉴델리로 이사를 왔으니, 그곳을 떠난지도 1년이 다 되어가네요. 뭄바이엔 딱 1년을 살았습니다. 그 1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임팩트 있었던 일을 말해 볼까 해요. 이 글을 읽으면 왜 제가 뭄바이에 가가 싫어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1. 전기보일러가 터진 사건.


저희가 살던 집은 30년 정도 된 아파트였습니다.

앞에 바다가 있어서 좋긴 했지만, 워낙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여기저기 문제가 많았습니다. 저희가 살던 동네 월세가 워낙 비싸서 회사 지원범위 내의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죠. 뭄바이에 딱 일 년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집이 좀 안 좋더라도 싸고 학교에서 가까운 그 집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날 저녁엔 남편이 회식을 하고 있었어요. 회사가 멀어서 출퇴근이 거의 2시간씩 걸리곤 했죠. 저녁을 먹고 아이들을 씻기려 보일러를 틀어 놓고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빗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런데 비는 오지 않았어요. 방 문을 열어보니, 욕실 천장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그것도 아주 뜨거운 비였죠. 

전기보일러가 터져버린 것이었습니다.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거실과 방으로 물이 들어왔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우산을 쓰고 욕실로 들어가 보일러를 껐는데도 물이 계속 쏟아졌어요. 결국, 젖은 몸으로 1층 경비실로 달려가 경비원을 데리고 와 해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집은 이미 물바다가 돼버렸습니다. 소파와 책장을 치우고 수건과 바스켓을 들고 다니며 물을 닦고 짜고, 닦고 짜고 반복했어요. 그렇게 2시간 동안 물을 치웠습니다.


“엄마, 난 그때 너무 신났었어. 집에서 슬라이딩하는 게 재밌었거든.”

“맞아, 나도 진짜 재밌었는데. 방에서 수영했잖아.”


네. 제 아이들은 그날을 아주 신났던 날로 기억합니다. 속이 타 들어간 사람은 저뿐이었어요.



2.  흘리며 병원에  사건


저녁 준비를 하다 왼손 검지를 깊게 베었습니다. 피가 뚝뚝 떨어졌어요. 너무 아팠죠. 집에서 혼자 치료를 하기엔 좀 깊게 베인 것 같았어요. 일단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딱 퇴근시간이었어요. 남편도 없었고요. 차도 없었고, 집 근처엔 병원도 없었습니다.

일단 두 아이에게 밥을 먹였어요. 아파도 엄마 노릇은 해야 했죠. 

아픈 손가락을 부여잡고서 병원을 검색했습니다. 그리고 우버 택시를 불렀어요. 문제는 기사가 목적지를 잘 모르는 거예요. 엉뚱한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어요. 저 역시 동네 지리를 잘 모르고 있었죠. 황당했습니다. 아이들은 덥고 졸리다며 칭얼 댔어요. 손가락에 감아 놓았던 붕대는 흥건하게 피가 젖어 있었죠.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정말 주저앉아 울고 싶었는데 꾹 참았어요.

다시 핸드폰을 들고 병원을 검색해보니 백 미터 앞에 병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작정 걸었어요. 그리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무작정 들어가서 접수를 하고 응급실로 갔어요.

그런데, 손가락을 본 의사는 소독만 해주고 그냥 가라는 것입니다. 전 꼬매야 할 줄 알았거든요…. 약 안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필요 없대요.....

병원 근처 약국에 가서 직접 항생제와 진통제를 사다 먹었습니다.

지금은 다 아물었어요. 응급처치하면서 붕대로 꽁꽁 싸맸더니 살끼리 잘 붙었더라고요. 흉터는 남았지만요.



3. 창문으로 비가 들어온 사건


델리로 이사하기 약 한 달 전, 뭄바이는 우기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비가 왔어요. 바다 근처라서 바람도 많이 불었고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비가 오면 창문으로 물이 들어오는 겁니다. 창문뿐만 아니라 벽을 뚫고 비가 들어오는 거예요. 침대와 이불이 다 젖어 버렸어요. 방안에 있던 살림살이를 모두 거실로 옮겼습니다.

그때부터 비가 올 때마다 물이 들어왔어요. 날마다 비가 왔죠.... 비가 오면 물을 퍼다 버렸어요. 델리로 갈 때까지만 꾹 참자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갈 거니까, 어차피 지나갈 거니까. 그렇게 그 시간을 버텼습니다.



이 사건들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이 더 있었어요. 그때마다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습니다.

친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어요. 차도 없었고, 근처에 놀 곳도 없었죠.

유일한 낙은 남편이 쉬는 날, 혼자 스타벅스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커피를 마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곤 스타벅스 1층에 있는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집으로 돌아왔죠.



그렇게 힘들었던 그때, 글을 가장 많이 썼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도 바로 뭄바이에 살 때였고요,  첫 책을 계약한 곳도 뭄바이였어요. 글을 썼기 때문에 힘들었던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날들이 이제 과거가 되었네요.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나 정말 힘들었다고, 그런데 잘 견뎌주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시간이 흘러 오늘이 어제가 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견딜 만한 힘이 되어주는  같습니다.  



오늘 이 힘든 일상들도 결국은 과거형이 되겠죠.

 학교도 가지 못하고, 회사도 가지 못하고, 자유롭게 커피숍도 가지 못했지만 잘 견뎌주었다고, 힘들었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견디며 살아보겠습니다. 과거형이 될 때까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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