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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20. 2019

갑작스러운 테러

홀리 아티산 베이커리(holey artisan bakery cafe)


2016년 7월 1일, 우리는 한국으로 휴가를 갔다. 원래는 휴가를 갈 타이밍이 아니었는데 가족들이 너무 보고싶어 남편을 졸라 휴가를 가게 되었다. 서울 언니집에 도착한 날 저녁, 갑자기 카톡 알림이 요란하게 울려왔다. 카톡창을 열어보니 50개가 넘는 카톡이 와 있었다.

“뭐지?”

그것은  다카에 사는 한인들의 단체 카톡이었다.

“홀리 식당이 공격을 당했대요.”

“지금 무장 괴한들이 습격했는데 한국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어머, 왠일이래요. 저 오늘 점심때 거기 갔다 왔는데.......”

“우리 직원들 거기서 저녁 먹는다고 기다리다가 너무 늦게 나와서 취소하고 그냥 나왔다던데요.”

“어머, 별일 없어야 할텐대.”

“바로 우리집 앞인데, 지금 무서워서 불 다 꺼놓고 보고있어요.”


홀리 아티산 베이커리(holey artisan bakery)는  이탈리안 식당으로 다카에서 가장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식당 앞에는 넓은 잔디가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하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였다. 피자와 파스타, 스테이크는 물론이고 크루와상과 바게뜨도 전통 이탈리아의 맛이 나는, 다카와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은 고급진 레스토랑 이었다. 특히 굴산 중심가, 외국공관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에 보안이 매우 철저했다. 그런 식당에 테러가 일어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괴한들은 7월 1일 저녁 9시에 그 식당으로 들이닥쳤다. 그 시간에 식사를 하고 있던 손님들과 점원들을 인질로 붙잡았다. 그리고 12시간만에 테러가 진압 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특히 일본 사람들과 이탈리아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인질 중에는 다카 어메리칸 스쿨의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다들 운 좋게 그 시간을 피해 식당을 다녀갔다고 했다.


그 사건은 방글라데시 온 나라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IS(극단이슬람주의)는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했고, 방글라데시 내에서는 소수의 보수이슬람 지지자들의 소행이라고도 했다. 누가 저지른 일이든 그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우리는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다시 다카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특히 공항 근처, 대형 슈퍼마켓, 유명 식당들이 공격대상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 소문의 출처는 항상 어느 나라의 대사관이라고 했다.

다카에 다시 돌아온 우리는 또 다시 집안에서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우리 뿐만이 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이 외출을 자제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 많은 외국인들이 다카를 떠나갔다. 특히 일본 사람들과 이탈리아 사람들, 여러 서양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다카를 떠났다. 어메리칸 스쿨의 아이들도 많이 떠나갔다. 그곳을 떠나지 않고 꿋꿋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었다.


여러 식당들은 보안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유리를 강화 유리로 바꾸고, 출입을 통제 하고, 모든 자동차를 검사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식을 하지 않았다. 식당들은 몇 달씩 적자를 이어갔다.

도로 여기 저기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차량을 통제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도로가 꽉 막혔다. 모든 인터네셔널 학교들도 보안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거의 1년 동안 여기 저기 무서운 소문이 돌았다. 공항 근처에서 폭탄이 터지기도 했고, 녹차밭으로 유명한 실렛에서 그들의 본거지를 습격했다는 소문도 들렸다. 한 동안 굴산 중심가에는 큰 탱크 한대가 항상 대기하고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괜히 가슴이 콩닥 거렸다. 마트에 가면 외국인은 우리 뿐이었다. 마트에 가서도 필요한 것만 서둘러 사서 돌아오곤 했다.

여러 외국 기업들이 다카를 떠나면서 방글라데시의 경제는 직격탄을 받았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정부에서는 그들의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 때  다카에 살고 있던 우리들은 서로의 집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각자의 집에서만 지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몇달이 지나도록 집안에서만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다카에는 또래 친구가 매우 귀하다. 그들은 만나자 마자 친구가 된다. 아이들이 친구가 되면 그 아이들의 엄마들도 어느새 친구가 되어있었다. 오늘은 우리집, 내일은 친구집 이렇게 돌아가며 놀곤 했다. 그렇게라도 놀 수 있어서 감사했다.  

거의 일년 동안 조심하며 다니다가 해가 바뀌자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외국 기업이 들어오고, 외국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테러를 일으킨 무리들을 모두 소탕했다는 뉴스가 들렸다.

다카는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장소에 “홀리 아티산 베이커리”가 오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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