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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02. 2020

선물의 의미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그가 까만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지나가다가 어울릴  같아서 샀어.”

무심한 말투였지만, 고민의 흔적을 느낄  있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갈색의 치마가 들어 있었다. 허리에 대보니, 종아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치마였다. 아랫부분엔 반짝이는 작은 스프링클이 촘촘히 둘러 박아져 있었고, 허리 부분은  고무줄로 단단히 덧대어져 있었다. 

이걸 직접 샀어?” 

응, 어울릴  같아서. 별로야?”

아니야, 예뻐. 고마워,  입을게.” 


남자에게 옷을 선물 받는  처음이었다. 까만 비닐봉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심한 표정으로 여자  가게에 들어가 옷을 고르고 돈을 지불했을 그를 떠올리느라 바빴다. 


마음이 붕붕 떠다녔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팔랑팔랑 날아 올라 꽃잎 위에 살짝 내려앉은 나비의 기분이 이럴까? 

 볼이 발그레지는 느낌이 좋았다.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콩닥거리는 심장과 찌릿한 정수리의 감각을 느꼈다. 조금씩 온몸의 감각이 되살아 나, 그의 목소리, 그의 냄새, 그의 모습, 그리고 그의 피부를 느끼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어느 날, 

기대하지 못했던 물건을 선물로 받았다.





“왜    입어?”

어떤 옷?”

내가 출장 가서    있잖아.”

아,  옷.  더워서.......” 



그는 한 번씩 옷을 선물로 사주었다. 

핑크색 원피스, 갈색 원피스, 줄무늬 원피스......


그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들어가지 않는 똥배 때문에 더 이상 원피스를 입을  없다는 것을.

아이들 때문에 치마를 입을  없다는 것을.

모유수유로 처진 가슴 때문에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을  없다는 것을.


하지만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무심한 얼굴로 여자 옷가게에 들어가 옷을 고르고, 돈을 지불했을 그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13 전, 그가  갈색 치마를 입어보았다. 허리 고무줄은 여전히 튼튼했다. 허리가  조였다.

.

.

.



이제  이런 선물을 받고 싶다.



이거 가지고 가서   입어.” 



그러면  다시 예전의 오감이 되살아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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